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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해」/에스터 하딩 저(요즘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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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해」/에스터 하딩 저(요즘 읽은 책)

입력
1996.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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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신화 통해 여성성의 실체 찾기고대중국을 역사상 가장 완전한 가부장제국가로 생각해 왔던 사람들은 중국신화를 접하면서 좀 의아한 느낌이 들 것이다. 중국신화의 서장을 장식하는 창조신 여와는 위대한 여신으로 부서진 천지를 재건하고 흙으로 인간을 빚어낸다. 중국의 가장 오랜 신화집인 「산해경」에 등장하는 곤륜산의 최고신은 남신이 아닌 여신 서왕모이다. 신화에서 이들 여신은 모두 독립적인, 지고한 존재였으나 후대에 이르러 가부장적 관념이 침투하여 남신(복희·동왕공)의 배우신으로 격하되고 만다.

「주역」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이 책의 원시형인 「귀장역」은 당시 은나라의 모계문화를 바탕으로 오늘의 「주역」과는 정반대인 곤괘를 수괘로 한 해석체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것이 주나라의 가부장적 문화하에 남성원리인 「군자」중심의 해석체계로 재편돼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신화나 고대문화 속에서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여성성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얻어진 개념들은 그동안 가부장적 문화에 의해 변형·왜곡되었던 여성성의 실체를 복원하는 데 많은 시사를 준다.

에스터 하딩의 「사랑의 이해」(문학동네)는 바로 이러한, 페미니즘의 신화·종교학적 기초의 수립이라는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다. 저자인 하딩은 의사로서 융과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고대의 달신화, 곧 태음상징체계를 설명한다. 그녀는 달과 여성성과의 공감적인 관계에 유의하면서 남성―호모사피엔스를 표상하는 태양신화에 의해 자리를 잃은 달신화의 신성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녀는 이러한 달의 상징주의에 대한 연구가 우리의 현대생활 속에서 너무나 폄하되고 무시되어 온 여성원칙의 속성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여성」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자연의 힘을 자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딩의 입장은 요즘 대두하고 있는 에코 페미니즘의 취지와도 상통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달신화에 관한 자료범위는 고대그리스, 인도, 중국은 물론 아프리카 및 아메리카 인디언신화에까지 미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정란 상지대 교수가 번역했다.<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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