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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못다한 대화/김병국 고려대 교수·정치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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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못다한 대화/김병국 고려대 교수·정치학(한국논단)

입력
1996.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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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뒤죽박죽이다. 북한 공산체제가 무너질 시점일진대 오히려 민주사회의 공권력이 주사파의 폭력에 무력함의 위기를 맛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자 시야를 넓히면 참담한 하나의 진실이 기다린다. 『전체주의를 민주로 미화하고 폭력에서 희열을 느끼는 과격세력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독일에는 아우슈비츠의 비극이 조작이라고 믿는 신나치가 있고 일본에는 대동아공영권의 부활을 열망하는 극우가 있다. 한국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한총련의 지휘부가 붕괴되면 세포조직 사이에서 조직재건의 운동이 벌어지고 주체사상이 소멸하면 새로운 위험한 이념이 그 공백을 채우려 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대축전에 동원되었던 학생대중의 경우는 달랐다. 상당수는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마음으로 연세대를 찾았다. 그리고 자신의 말과 행동 속에 배어 있는 이적성과 폭력성을 의식하지조차 못한채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그러나 농성장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다음에는 그냥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경찰이 검거한 한 「대학생」의 말이 기막히다. 『배신자로 낙인찍힐까봐 농성장을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그 학생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회의와 두려움과 반성이 교차하는 기이한 감정은 동원학생 상당수의 마음 한 구석에서 동시에 일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고 서로 고민을 나누는 학생은 없었다. 그래서 모두는 서로가 한총련의 맹렬한 전위대라고 착각하면서 침묵하게 되었다. 진정한 대화가 없었기 때문에 다수는 자신이 다수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농성장의 여론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소수 과격세력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수천명의 평범한 젊은이가 이렇게 의식없이 폭력시위에 가담하고 자신의 삶을 농성장의 구부러진 「여론」에 떠맡기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무엇 때문인가. 8월의 폭염 속에서 모두가 주고 받은 공동의 질문이다. 시민 각자는 제일 먼저 사태의 원인제공자를 가려내려 하였다. 대북정책의 혼선이 주사파에 대한 사회의 경계심을 늦추어 놓았고 정당이 운동권출신을 면죄한 까닭에 시위가 정치경력을 쌓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주사파가 무능한 공권력을 두려워할 리 만무하다.

그러나 그러한 몇 마디가 하나의 일체화한 「국민여론」으로 자리를 굳히자 상당수의 시민들은 그 정치적 함의를 따져보면서 다시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안보의식을 다시 강화할 일관적 대북정책은 무엇일까. 강경한 대결정책이 그것인가. 그렇다면 광복절 축사 속에 담긴 정부의 「온건한」 대북제의에 국민 대다수가 동의와 지지를 보낸 것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고민은 다른 질문에 가서 더욱 더 커진다.

운동권 출신이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게 한국사회 안에 커다란 「이념적 정화」의 장치가 세워져 있었다면 결과가 무엇이었을까. 시위경력이 정계 진출의 발판이 되지는 못하였겠지만 과거 학생운동권세력은 소외의식에 젖은 불만세력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그것이 한국사회의 안정에 더 기여하고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더 분명히 보여주는 대안인가. 게다가 정부가 공권력을 발동하려 할 때 거쳐야 하는 절차와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을 미리 구체화하지 않고 국가권력 강화의 소리만을 높인다면 결과는 어떠한 것일까. 시위현장의 경찰에게 대응의 수위를 결정할 지나친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은 아닌가. 그 경찰이 항상 옳은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누가 보장하는가. 민주사회는 강력한 공권력이 지탱한다는 것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무엇이 강한 공권력인가」이고 「어떻게 하면 그러한 공권력을 확보하느냐」에 있지 않은가.

○건전한 회의

질문 하나하나 속에는 「우리가 원하는 신한국이 어떠한 나라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담겨 있다. 그러나 시민 각자의 마음 한 구석에 자라나는 이러한 건전한 회의와 신중함의 소리는 공론의 장에서 강력히 제기되지 않았다. 서로 동시에 꺼낸 분노의 첫 마디가 하나의 「국민여론」으로 자리를 굳히자 나중에 떠오른 온갖 질문이 상대방에게 불순하거나 무책임한 말로 비추어질 것이 걱정스러워서였다.

경찰서에서 조사받던 대학생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먼저 던진 「말」의 무게에 눌려 나중에 품어본 회의와 고민을 공개석상에서 서로 나누지 못한 것은 기성세대인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민은 마음속에 가두어 놓은 못다한 말을 밖으로 꺼내야 한다. 대북정책과 정당정치 및 공권력의 문제는 주사파의 난동에 대한 분노의 감정에 밀려 그 방향이 결정되어서는 안되는 이 시대의 고민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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