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운명체를 비유할 때 「한 배를 탔다」고 말한다. 같은 배라도 여객선이나 수송선을 탔을 때 보다 고된 노동이 수반되는 원양어선을 탔을 때 「한 배를 탄」운명공동체의 의미는 한층 짙게 마련이다.남태평양에서 참치잡이를 하던중 선상반란이 일어난 원양어선 페스카마15호에는 국적은 달라도 동족인 중국국적의 조선족 7명이 타고 있었다. 원양업계의 근로여건이 열악하다고는 하지만 원양어선에 취업을 희망하는 제3세계의 인력은 차고넘친다. 우리의 송출회사가 조선족을 태운 것은 언어소통이 원활하고 같은 값이면 동족에게 취업기회를 준다는 동포애적 배려가 있었을 터다.
그들이 선상반란을 일으켜 동족인 우리 선원 7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원인분석이 있다. 값싼 외국인 노동력을 쓸 수 밖에 없는 원양업의 현실, 그 결과 한국인 선원보다 외국선원들이 수적으로 많아져 선내질서를 장악할 수 없게 된 상황, 한국선원과 외국선원간의 임금격차, 원양업의 불황에 따른 체임사태 등 등….
그러나 이런 분석만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설명은 충분치 않다. 페스카마15호의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 이인석 1등항해사는 선상반란전에 한국인 선원에 의한 조선족선원 구타사건이 있었다고 전했다. 구타사건이 반란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을 가능성은 크지만 군대이상으로 엄격한 선상규율에 비추어 이번같은 잔인무도한 집단살인극의 원인으로 보기에는 그 역시 충분치 않다.
잠자고 있는 동족의 가슴에 비수를 꽂게 한 살의의 바닥엔 무엇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보는 앞에서 동족으로 믿어왔던 한국선원으로부터 구타를 당한 것에 원한이 사무쳤던 것은 아닐까. 더 힘든 일을 하면서 그들이 받는 월급이 26만원에 불과한데 한국선원들의 월급이 80만∼120만원으로 3배이상 된다는 것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오를 품게 된 것은 아닐까.
지금도 중국의 조선족들은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들중 많은 사람은 꿈을 이루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조선족은 밀입국자로 적발돼 발도 딛지 못하고 쫓겨간다. 적법하게 입국한 사람 가운데는 실의와 배반감으로 가슴에 비수를 품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싸움중 가장 잔혹한 싸움이 골육상쟁이다. 동족간의 문제는 그래서 더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북한을 다루는 문제도 같은 차원이다. 뒤틀린 동족의식 속을 타고 흐르는 「카인의 피」를 맑게 해줄 정혈제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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