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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6.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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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작품중 「칼레의 시민들」이란 걸작이 있다. 누더기 옷에 목엔 줄을 걸치고 손에는 열쇠다발을 든 6명의 남자를 조각한 작품이다. 보기에도 풀이 죽고 처량한 모습의 이들은 바로 14세기 중엽 도버해협에 면해 있는 항구도시 칼레를 대표하는 부자 및 사회지도층들이다. ◆1337년 잉글랜드와 프랑스간에 백년전쟁이 발발한다. 잉글랜드왕 에드워드 3세는 승전을 거듭, 1347년 칼레시를 포위공격한다. 칼레시민들은 빈센트의 지휘아래 일치단결해 이에 대항한다. 11개월동안 결사항전을 계속하지만 프랑스의 원군도 오지 않고 식량도 떨어져 항복하기에 이른다. ◆장기저항에 화가 난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민을 모두 죽이려다가 대신 저명인사 6명을 인질로 붙잡기로 한다. 칼레시의 제1갑부인 상 피에르가 제일 먼저 인질을 자원한다. 역시 자산가인 장 페인 등이 뒤따른다. 로댕의 작품은 이들이 에드워드진영으로 떠나가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26일 서울지법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벌그룹 총수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사건 피고인으로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서였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출정한 이들중 4명에겐 뜻밖에도 징역 2년6개월∼2년의 유기형이, 나머지에겐 최고 3년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칼레시민들이 학살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인질을 자원한 상 피에르 등 칼레시 부자들의 의로운 이야기는 로댕의 조각작품의 소재가 될만큼 갈수록 빛이 난다. 이에 비해 「뇌물공여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우리나라 재벌총수들은 역사에 어떠한 모습으로 전해질까. 당사자나 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 재벌총수들에게 실형이 선고된 의미를 곰곰이 되씹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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