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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퇴장(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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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퇴장(장명수 칼럼)

입력
1996.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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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26일 서울지법에서 열려 전씨에게는 사형, 노씨에게는 징역 22년6월이 각각 선고됐다. 재판부는 전씨에게 반란수괴 상관살해미수 특가법상 뇌물죄 등을 적용했고, 노씨에게는 반란중요임무종사 상관살해미수 특가법상뇌물죄 등을 적용했다.하루종일 진행된 재판에서 5·6공을 장악했던 군출신 인사들과 대재벌의 총수 등 34명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 정치와 경제의 핵심에서 지난 시대를 이끌어 온 기라성같은 인물들에 대한 새 시대의 단죄다.

재판을 바라보는 국민의 표정은 대체로 담담했다. 작년 10월19일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씨의 은닉 비자금을 폭로한 후 10개월 동안 숨가쁘게 이어져온 사건들을 겪으며 국민의 충격과 분노는 이미 소진된 듯하다. 전직대통령을 잡아넣겠다는 결단이 문제지 잡아 넣은 이상 법적으로 사형선고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누구나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담담한 분위기가 마음에 걸린다.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냄비스타일의 반응이 이번에도 나타난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상상을 뛰어넘는 온갖 사건들이 쉴새없이 터지는 험난한 세월을 살면서 우리는 그 사건들의 의미와 교훈을 음미할 겨를이 없었다. 늘 다음 사건에 놀라고 흥분하고 한탄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번 일을 그렇게 넘길 수는 없다. 이번 일은 전직대통령 두사람만의 불행이나 치욕이 아니고, 나라의 불행이다. 법원의 판결은 그들 대통령의 시대, 그 시대를 같이 책임져야 할 많은 사람들에 대한 총체적 유죄선고다. 새 질서가 묵은 질서를 단죄하는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없이 어떻게 전직대통령에 대한 사형선고가 나올 수 있겠는가.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인정할 때 우리는 생의 중심이 바로 서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나라도 개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나라를 13년간 통치해온 전직대통령 두사람에게 내려진 중형을 나라의 불행으로 받아들이고, 그 시대를 함께 살아온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이 많을 때, 그 반성의 무게만큼 나라에 중심이 생길 것이다.

그들을 단죄하는 검찰과 사법부, 권력을 가진 어느 누구도 그들의 시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언론도 그렇다. 모두가 그 시대를 진정으로 떠나지 않았다면 무슨 자격으로 그들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전직대통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의미를 깊이 새김으로써 진정한 새 질서를 세워야 한다. 오늘도 그 시대의 문화를 향유하고, 그 시대의 방법을 버리지 않고, 그 시대에 내린 뿌리로 이득을 취하면서 「수괴」만을 처벌한들 무슨 변화가 오겠는가.<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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