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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특집·부록·섹션「보는신문」체제로(언론학자가 본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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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특집·부록·섹션「보는신문」체제로(언론학자가 본 한국일보)

입력
1996.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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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식 나열 탈피 형식·내용 차별화를신문 지면에서 기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밑돌고 있다. 기사의 무게는 점점 줄고 색채는 엷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신문업계의 증면경쟁이 가열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신문은 62년부터 1일 8면 체제를 유지해 오다가 81년 언론통폐합 이후 50% 늘어난 12면 체제를 갖췄다. 87년에는 16면, 92년에는 24면 체제가 되더니 어느덧 현재의 36면에서 48면 체제로 늘어났다.

증면은 대개 특집·부록, 섹션화 형식으로 지면을 늘리거나 지방판의 내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여성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 가정 쇼핑란 경제기사를 생활과 밀착시킨 생활경제면과 문화·과학면 기획물 동정란 독자란을 신설하거나 확대했다. 모든 신문이 거의 매일 자사 홍보성 캠페인 기사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그래픽이나 사진의 양도 증가하여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변환했다.

소위 「세계화」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급변하는 환경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그릇이 마련됐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 그릇을 만드는 동기가 무분별하고 그릇에 담는 내용이 신통치 않다는 점이다.

증면은 일차적으로 광고지면을 늘리기 위해 시작됐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생존을 위해 경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도가 지나치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결국 원칙 없는 「전쟁」상황까지 벌어지지 않았던가. 또 이 그릇에 독자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을 깊이있게 분석한 기사를 채우기보다는 흥미 위주의 기사들을 백화점식으로 모아서 늘어놓기 일쑤였다.

증면으로 신설됐을 법한 한국일보의 지난주 특집·섹션면을 살펴보자. 방송, 연예, TV WEEK(연예 방송 가요·팝 등 3면), 문화, 문화게시판(2면), 독서(2면), 여성생활, HOME WEEK(가정 취미 레저 등 3면), 경제와 생활(광고·마케팅 재테크 기업현장), 중소기업(각1면 주3회), 부동산(2면), 학술·문화재, 과학, 과학기술, 정보통신, 뉴미디어 2000(2면), 캠퍼스, 독서, 포럼, 그린넷캠페인, 건강에세이, 의사가 만드는 건강·의학(2면) 교육(2면 논술고사), 생활외국어(매일) 등 온갖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거기다 「수능시험 특별부록」까지 별지로 나왔다. 기사의 질은 논외로 하더라도 일단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한국일보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신문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신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백화점식 주간 지면구성 형식일 뿐이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현상 중의 하나는 신문을 구성하는 두 요소인 광고나 기사에도 포함되지 않는 내용이 실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일보의 경우 「생활외국어」가 매일 한 면을, 「논술고사」가 주일마다 2면씩 차지한다. 과잉교육(?) 현상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독자층이 신문을 교재로 삼아 토익점수를 올리고, 일본어를 배우고, 생활영어를 익히고 있을까. 지면 「때우기」용이나, 시험문제의 적중률을 들먹이며 유치한 자사홍보용으로 쓸 것이 아니라면 지면낭비이다. 독자에 대한 홍보치고는 효용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신문의 교육적 기능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독자들에게 유용한 봉사인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일보가 독자들에게 「세계화」 감각을 키워주려고 한다면 창간이후 연재해온 만화 「블론디」를 계속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40년 넘게 조용히 국제적인 감각과 유머를 제공해 온 블론디는 「생활외국어면」의 밑바닥에 위축된 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 신문계에 정론으로 국민여론을 계도해서 국민적인 신망을 받는 권위지가 없다. 비슷비슷한 그릇과 내용으로 어떻게 해서든 독자수를 늘림으로써 「권위」를 세우려는 대중지만 존재하는 오늘의 신문현실이 아쉽다.

굳이 권위지를 지향하지 않더라도 각 신문사들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의 무게와 색깔을 가져야 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보도하고 논평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언론은 아직도 「뜨거운 사건」을 찾아 한 목소리를 내는 냄비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형식과 내용에 있어 차별화나 특성화보다는 서로 닮기에 여념이 없다. 갈수록 신문이 읽고 볼 「거리」와 귀 기울일 만한 「목소리」가 없다는 독자들의 소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김영기 전남대 교수·미 미주리대 신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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