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자 평가제 이어 「다면평가」 확산/“능력이 우선” 곳곳서 직급 역전현상/“기존 위계질서 파괴” 우려 목소리도『경영혁신만 이뤄진다면 회사가 뒤집혀도 좋다』 선경그룹 부장들은 「리더십 개발과정」에 입소하라는 회사측 통보를 받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연수기간 부하들이 자신의 지도력과 업무능력 인간성 등을 종합평가한 점수표를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과점수가 좋은 일부 부장들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부하들로부터 냉정하게 버림받은 대다수의 부장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느냐』며 「하극상」을 자행한 부하를 원망할 뿐이다.
부하가 상사의 점수를 매기고 대리가 부장을, 부장이 이사를 거느리는 믿기지 않는 일이 기업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백발이 성성한 부장급 간부들이 조직활성화를 이유로 갓 입사한 신세대 사원에게서 정신교육을 받는등 바야흐로 상사들의 「수난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거꾸로 경영」의 대표적인 형태는 부하가 상사를 평가하는 「상급자 평가제」. 92년 국내처음으로 동양SHL이 「상급자 평가제」를 도입할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물정 모르는 대학 교수들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94년부터 삼성과 두산그룹이 부하들에게 「상급자 평가권」을 보장하면서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이 이상할 정도로 재계의 유행이 돼버렸다.
최근에는 「상급자 평가제」는 물론 자신과 동료들까지 평가하는 「다면평가」가 인기를 얻고 있다. 다면평가의 일종인 「360도 평가」를 시행중인 두산그룹 광고계열사 (주)오리콤 직원들은 상사는 물론이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근무하는 동료들도 일일이 평가해야 한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 진출한 외국업체들도 마찬가지로 한국IBM은 「전방위 평가제」라는 이름으로 상사·본인·동료에 대한 평가를 점수화하고 있다.
능력주의 인사관행의 정착은 감투(직급)와 실제역할(직책)을 분리시켜 대리가 부장을, 부장이 이사를 거느리는 「직급역전」현상도 낳고 있다. 지난 1일 정기인사를 단행한 동양화재는 지점장 후보 영순위였던 5∼6명의 차장들을 제치고 갓 서른을 넘긴 1년차 대리 배승일씨를 신설된 부평지점장에 전격 발탁했다. 최근 팀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동양제과도 직급역전의 또다른 사례다. 동양제과는 이번 인사에서 능력이 검증된 이사와 부장을 본부장에 배치하고 그밖의 임원은 부문장에 배치해 버렸다. 그 결과 생산·구매본부의 경우 본부장에 갓 진급한 이사가 배치된 반면 4년차 임원이 부서장을 맡아야 하는등 몇몇 부서에서 직급역전현상이 나타났다.
부하들이 자신들의 부서장을 선발하는 것도 「거꾸로 경영」의 한 형태다. LG전자는 제품개발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팀원들의 사기앙양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아래 팀원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팀장을 직접 선발하는「팀공모제」를 도입했다.
「팀공모제」로 자신들이 원하는 팀장을 모셔온 구미공장 영상디스플레이연구소 「탐색연구팀」은 여태까지 700일 이상 걸리던 연구개발기간을 300일로 줄이겠다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거꾸로 경영」의 여파는 기업들의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비켜가지 않는다. 제일제당은 이달부터 거꾸로 교육프로그램인 「내일을 여는 마음으로」를 부장들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
회사의 엄명에 따라 「내일을…」에 참가한 부장들은 대리들의 지도아래 고객불만 체험, 부하역할 연기등 업무와 관련된 교육은 물론이고 부하직원들이 지적한 자신의 잘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비지땀을 흘려야 한다.
한편 기존의 위계질서를 뒤엎고 경영혁신과 의사소통을 강제로 활성화하는 「거꾸로 경영」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3월 마련한 「신인사제도에 관한 보고서」는 연공주의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 풍토에서 능력주의 인사관행을 전면적으로 시행할 경우 구성원의 반발로 역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황원일 연구원(29)은 『거꾸로 경영은 기존의 인사체계를 뒤흔들어 기업조직의 허리인 부장들을 궁지로 내몰게 되며 이에따라 본래 의도와는 달리 조직의 활력을 감소시킬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조철환 기자>조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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