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위와 관련된 거의 모든 기록을 경신한 한총련의 연세대 점거농성사태 앞에서 시민들은 한결같이 이같은 소모적이고 체제부정적인 학생운동이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정부 또한 한총련의 일부 조직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함으로써 차제에 과격학생운동을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하지만 이같은 강경대응만으로 극렬학생운동이 발본색원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른다. 한총련의 지도부가 검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쉽게 그 조직이 와해될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지금의 한총련이 와해되더라도 새로운 극렬조직이 한총련이 차지해 온 공간을 메움으로써 학생운동을 장악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운동은 80년대 이래 내부의 이념논쟁 과정에서 숫자로는 열세이지만 과격성에서는 앞서는 소수파가 주도권을 장악해 왔다. 이념논쟁에서 패배한 보다 온건한 다수는 학생운동의 주류에서 떨어져 나감으로써 학생운동은 한편으로는 더욱 극렬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적 기반이 점점 더 축소되어 갔다. 지지기반의 열세와 민주화 이후 이념적 호소력의 감퇴에도 불구하고 소수극렬파가 학생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조직되지 않은 다수에 비해 조직된 소수가 지니는 우위 때문이었다. 학생운동의 공간은 여전히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메울 대체적인 운동은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한총련사태와 같은 파괴적이며 체제부정적인 학생운동이 영원히 사라지기 위해서는 건전한 대체적인 조직이 자라나 학생운동의 공간을 채워야 한다. 학생운동의 공간이 공백상태로 남아 있는 한 한총련과 같은 조직은 얼마든지 자라날 수 있다.
정부는 극렬학생운동의 입지를 축소하기 위해 학생회비 등 운동의 물질적 기반을 와해하는 한편 이념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물적 기반이 근본문제는 아니다. 학생회비나 자판기 운영 수익금 등은 누가 학생회를 장악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건전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념도 근본문제가 아니다. 극렬분자는 전체 대학생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며 이들이 대다수의 학생들로부터 소외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오늘날 학생운동의 위협은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대로 「옛것은 죽어 가는데 새로운 것은 미처 태어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비롯한다. 이같은 위기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극적으로 한총련과 같은 과격운동조직을 파괴하는 것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새로운 건전학생운동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일구어야 한다. 대학생들의 열정과 순수성을 수용하고 비판정신과 실험정신을 고양하며 창의력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방법을 각 대학들은 모색해야 하고 정부는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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