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에서 농성중이던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경찰의 진압작전으로 9일만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한 어머니는 그들이 너무나 「보통 아이들」처럼 보여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이 뿔 달린 공산주의자일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아래 자란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젊은이들이 줄줄이 잡혀나오는 광경을 보니 착잡했다고 그는 말했다.반바지 차림에 배낭을 멘 여학생들, 소년티가 채 가시지 않은 남학생들은 『엄마 살려줘. 엄마 배고파』라고 소리칠 것 같았다. 저 학생들이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 싸우던 바로 그 「투사」들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들중 상당수는 경찰 조사를 받으며 『선배와 친구들이 권해서 시위현장에 따라 갔을 뿐』이라고 변명했다는데, 그 변명 역시 어린애같은 소리다.
『그들은 사실 어리고, 누구도 그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외로운 학생들이 많다』고 한 대학원 학생이 말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 초년생들이 역사와 현실의 모순을 발견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소외감 등으로 고민할 때 의논상대가 돼 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주체사상등에 관심을 갖게 되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백안시되고, 오직 운동권 안에서만 위안을 얻게 된다.
부모는 『너 빨갱이가 되었구나』라고 펄펄 뛰고, 교수들의 말은 진부한 설교로 들리고, 진보성향의 교수들은 운동권이 잘못 나가고 있는데도 한마디 조언이 없고, 운동권 선배들만이 의식을 깨우쳐주니 세뇌당하지 않을 수 없다. 한총련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중 많은 숫자는 사회에 대한 실망이나 저항감, 개인적 좌절을 대화로 풀지 못하고, 주체사상속에 해결책이 있다는 환상을 품게되었을 것이라고 그 대학원생은 설명했다.
그러나 「어리고 외로운」 그들이 벌인 일은 얼마나 엄청난가. 9일동안 미친 전쟁을 치른 연세대 캠퍼스는 쑥밭이 됐고, 전경 1명이 목숨을 잃었고, 양측에서 수많은 사람이 다쳤다. 월급을 쪼개어 10만원, 100만원의 학교발전 기금을 냈던 연세대 동문들은 대학측 피해가 수십억원이란 사실에 격노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어리석음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김일성 부자의 충성스런 전사가 되겠다는 미친 소동에 무려 5,000∼6,000명이나 되는 대학생들이 몰려들어 광기의 축제를 벌였다. 그들을 방치하는 것은 폭탄을 끼고 살아가는 것처럼 위험하다.
이번 사태로 한총련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어떤 젊은이들은 계속 운동권의 유혹에 빠질 것이다. 그곳에는 뜨거운 결속과 동지애, 적에 대한 증오, 우상에 대한 흠모와 환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어리석다고 탓하지 말고, 왜 어리석은 세계에 빠져드는가를 연구해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