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의 폭력시위가 한 젊은 의경의 목숨을 앗아갔다. 서울시 경찰청 소속 김종희 이경은 진압작전에 참가했다가 시위학생이 던진 벽돌에 머리를 맞았다. 경찰병원에 옮겨져 대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김이경은 20세다. 대학 1년을 수료하고 군복무를 위해 지난 4월 의무경찰에 입대한 시위학생들과 똑같은 대학생이었다.
대학생들이 같은 대학생을 벽돌로 때려 그 귀중한 목숨을 앗아가는 이 어처구니 없는 시대적 비극은 그 부모와 가족만의 슬픔과 아픔으로 끝날 수가 없다. 이 사회의 비극이고 우리 모두의 아픔이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한총련의 극렬시위대는 어떤 집단이기에 같은 젊은이의 꽃몽우리 같은 삶마저도 마구 앗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인가. 그들이 무엇이기에 생판 남의 대학교 캠퍼스를 투쟁의 장으로 만들고 집기와 교수들의 연구자료가 수록된 컴퓨터를 부수고 강의실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캠퍼스를 유린할 권리가 있다는 말인가.
한총련지도부가 친북·이적 집단이 아니라면 왜 집회만 열렸다 하면 과격시위로 치닫고 쇠파이프와 각목을 휘두르고 돌팔매와 화염병을 던지며 저지경찰을 적대시하고 경찰을 납치하며 경찰차를 탈취하는가. 한총련은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한다.
올들어서만도 한총련은 7백56회의 극렬과격시위를 했다. 그들이 사용한 화염병만도 6만1천개가 넘는다. 그러면서도 한총련지도부는 과격폭력시위의 원인제공자는 경찰이고 경찰의 강경진압 때문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과연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연세대 9일투쟁」에서 사용한 4천8백개의 화염병과 똑같은 규격으로 잘라 만들고 손잡이에 헝겊까지 말아감은 3천여개의 쇠파이프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가. 모두가 사전에 준비한 것이었다. 과격폭력시위를 처음부터 계획했고 게릴라식 투쟁방법과 도구까지 준비했던 것이다.
중상을 입고 경찰병원에 입원한 전·의경만도 1백63명이나 되고 이진광일경은 중태라고 한다.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대학생들의 시위농성에서 이러한 인명피해와 대학이 입은 피해가 수십억원이 될 정도의 폭력성 파괴성을 드러낸 시위를 우리는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가.
정부는 집회승낙서를 의무화하고 폭력시위를 검거위주로 대응하기 위해 집시법을 개정키로 했다는 것이다. 지체없이 추진할 것을 촉구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총련처럼 아예 법을 어기고 덤비는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공권력이 별도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폭력시위는 이미 시위차원을 떠난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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