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에어돔 분야 “독보적”/중기 전용전시장 사운걸고 건립 “신바람”/천막 제조 30년 숱한 부심끝에 재기 성공국내 에어돔 제작의 독보적 업체인 (주)타이가의 조동순 회장(63)은 무더운 올여름이 유난히 즐겁다. 성공과 좌절의 연속끝에 90년부터 6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일궈온 (주)타이가가 사운을 걸고 국내 최대규모로 여의도에 세운 에어돔이 16일 개장됐기 때문이다.
63년 광산업에 뛰어들면서 시작된 조회장의 「비즈니스 인생」 30년은 비틀거리면서 전진을 거듭한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축소판이다.
조회장은 58년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한뒤 63년 강원도에서 규석과 장석을 채취, 일본으로 수출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첫사업은 불과 2년여만에 빚만 남기고 끝나버렸다.
빚을 청산한 조회장은 수중에 남은 30만원을 밑천으로 65년 남대문시장에 6평의 가게를 마련, 평생의 사업이 될 군용천막을 만들기 시작했다. 때마침 미국의 군수원조가 중단되면서 70년께부터 불어닥친 군수용품의 국산화바람은 조회장을 순식간에 1,000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중견기업 「제일중직」의 사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7년도 채 못 가 부도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실의에 빠진 조회장에게 절친한 대학친구인 홍순영 당시 나이지리아대사가 『자네라면 나이지리아에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프리카 진출을 권했다.
78년 가방 하나만 들고 나이지리아에 도착한 조회장은 나이지리아 군장성과 손을 잡고 군용천막 조립공장을 세웠다. 또 나이지리아의 수도인 라고스에는 일제 자동현상기를 수입, 컬러사진 현상소를 차리는 한편 인근 카메룬에도 백화점을 세워 「아프리칸 드림」을 꿈꿨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의 정변과 값싼 중국제품의 침투는 또다시 조회장을 좌절로 내몰았다. 90년 귀국한 조회장은 천막으로 사업을 일으킨 그답게 에어돔과 컨테이너 백 사업에 뛰어들었다.
에어돔은 방염과 자외선차단처리가 된 PVC구조물에 바람을 불어넣어 기둥없이 서있는 거대한 첨단 구조물. 조회장이 사업에 뛰어든 90년 당시만해도 미국 캐나다 일본 등만이 설치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조회장은 기술습득을 위해 에어돔이 세워진 곳을 찾아 4년을 넘게 세계 곳곳을 떠돌아 다녔다. 그리고 94년 9월 한국종합전시장에 1,500평 규모의 에어돔을 자체기술로 건립하는데 성공한뒤 한국 에어돔분야의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3전4기의 기적을 이순의 나이에 에어돔으로 이룬 조회장은 『2002년 월드컵을 치를 수 있는 대형 에어돔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조철환 기자>조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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