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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정폭력금지법」 추진 계기 미 실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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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정폭력금지법」 추진 계기 미 실태 보고

입력
1996.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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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손찌검도 최고 징역 2년형/“더이상 집안 일 아니다” 모든 주 법 강화/판결 어기고 계속 괴롭힐땐 7년형까지/구타 남편 접촉금지령속 아내 살해 법 한계 드러나기도미국은 76년 펜실베이니아주가 처음으로 「가정폭력금지법」을 제정한 이후 모든 주에서 가정폭력을 법으로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법으로 규정된 폭력의 범위가 애매하고 재판절차도 까다로워 가정폭력을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움직임을 계기로 미국내 가정폭력의 실태와 법적대응장치등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는 8일 가정폭력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가정폭력의 범위를 확대한 가정폭력금지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새 법안은 우선 배우자등 가족과의 접촉등을 금지한 법원의 판결을 무시한 채 폭력을 일삼는 상습범을 단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새 법안은 가족과의 접촉이 금지된 사람이 계속 가족을 미행하거나 해를 입힐 경우, 최고 징역 7년의 중죄로 다스릴 수 있게 했다. 종전에는 배우자등에게 육체적으로 심한 상처를 주거나 재산상 큰 피해를 입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죄를 적용할 수 없었다.

그동안 경범죄를 적용해오던 팩스, 전자우편(E-메일), 전화자동응답기등을 이용한 협박행위에 대해서도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게 했다. 또 법원의 판결을 위반한 사람은 폭력행사 여부와 관계없이 즉시 체포할 수 있으며 친구나 애인등도 가족에 준해 법을 엄격하게 적용키로 했다. 파타키 주지사는 『가정폭력범들을 관대하게 눈감아주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이들은 주정부가 운영하는 형무소에서 죄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내에서 가정폭력범을 가장 엄하게 처벌하고 있는 매사추세츠주도 꾸준히 법을 강화하고 있다. 매사추세츠주는 가정폭력이 발생할 경우, 폭력전과가 없는 초범이라도 가해자를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게 최근 법을 개정했다. 법에 따라 경찰은 목격자나 피해자의 뚜렷한 육체적 상처없이도 폭력행위가 있었다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가해자를 체포할 수 있다. 또 법원은 손찌검 등 사소한 폭력에 대해 최고 징역 2년형을 내릴 수 있다.

연방정부도 94년 미 전역에 가정폭력 신고전화 설치 등을 의무화한 「여성에 대한 폭력금지법안(VAWA)」을 제정하는 등 가정폭력퇴치에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폭력이 만성적인 사회악으로 꼽히고 있는 미국에서 가정폭력이 정치적 문제로 부각된 것은 최근 10여년 사이의 일이다. 법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도 가정폭력은 공권력이 아닌 당사자들이 풀어야 할 집안내 문제라는 인식이 뿌리깊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망을 피해가며 가정폭력을 일삼는 상습범들이 늘어나고 그로 인한 폐해가 심각해지면서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뉴욕주의 경우 지난 2월 발생한 한 살인사건은 기존법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주었으며 결국 법 개정의 촉매구실을 했다. 피해여성은 전남편의 구타와 협박에 시달리다 법에 호소했지만 법원은 경범죄로 처벌하는데 그쳤다. 전남편은 풀려난 즉시 예전 부인을 찾아가 사살한 뒤 자신도 권총으로 자살했다. 가족들은 전남편이 끊임없이 살해위협을 했음에도 불구, 당국이 접촉금지조치만 취했을 뿐 별다른 감시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뉴욕시에서 범죄희생자 보호활동을 하고 있는 민간단체인 빅팀 서비시즈(Victim Services)가 분석한 자료는 가정폭력의 실상을 생생히 보여준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내에서는 15초마다 여성한명이 남편 또는 남자친구에게서 구타를 당하는 등 해마다 400만명의 여성들이 가정폭력의 제물이 되고 있다. 뉴욕시만 해도 매일 165명의 여성이 가정폭력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으며 시운영 무숙자보호소에 수용된 여성의 21%는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여성이다. 또 뉴욕시 여성의 32%가 구타를 당한 적이 있으며 이중 10%는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입원해야 할 정도로 심하게 맞았다. 자녀들에 대한 폐해도 심각해 최근 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300여만명의 미국 아이들이 가정에서 육체적 학대를 당했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을 신고하는 비율이 실제 발생한 사건의 30%선에 불과하고 그나마 대부분의 여성들은 재판을 중도에 포기한다고 말하고 있다. 배우자등과 화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재판절차가 복잡하고 보복이 두려운 게 주된 이유다. 구타남편과 떨어져 있는 여성이 남편에게 살해당할 위험은 그냥 함께 살고있는 여성에 비해 75% 높다는 조사도 있다. 또 이혼할 경우 당장 생계가 막막한 여성들은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빅팀 서비시즈의 가정폭력 담당 상담원인 니나 카스트로씨(34·여)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법을 불신해 이를 외면하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며 『재판도중 또는 이후에도 이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 가정폭력/95년 한해 400만 여성이 남편·남자친구에 맞아

미국내 가정폭력에 대한 공식통계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95년 한해에만 400만명의 여성이 남편 또는 남자친구에게서 육체적 학대를 당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성이 당하는 전체 폭행사건중 70%는 가해자가 남편 또는 남자친구였으며 살인사건의 범인도 52%가 남편 또는 남자친구였다.

또 가정폭력방지기금(FVPF)이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중 34%는 가정폭력을 목격했으며 90%는 가정폭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인종,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응답자의 81%는 현재의 법은 가정폭력을 막기에 부족하다고 답했다.

미국 여성중 4명당 1명은 남편에게서 폭행을 당한 적이 있으며 특히 임산모의 경우 37%가 폭행을 당했다는 조사도 있다. 로드 아일랜드대 연구진은 해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치료비만 최소 50억달러에 달한다고 보고했다.<뉴욕=이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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