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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시위와 공격 본능(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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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시위와 공격 본능(화요세평)

입력
1996.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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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성적 욕구와 공격욕구라는 두가지 큰 본능적 욕구가 있는데, 우리는 성적 욕구를 다루는데 있어서 서양사람들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채식을 주로 해온 까닭에 남아도는 체력이 많지 않고, 남존여비문화가 지켜지고 있어 「보양」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나와도 「보음」이라는 말은 아예 없다. 한 두번의 외도는 그냥 넘어가며, 그래서 「배꼽 아래 인격은 묻지 말라」는 말을 그럴듯 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기름진 음식으로 늘 힘이 남아도는 서양사람들은 정력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해 고민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녀간의 성애에 더 탐하고, 한 눈 팔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매일매일 사랑을 확인하느라 뽀뽀를 수없이 해야만 한다. 어느 국방장관이 창녀와의 외도가 들통나 가정적·사회적으로 매장당했던 예가 어찌보면 그들의 성적 미숙을 드러내는 좋은 예가 되겠다. 우리는 성인사회에서 노골적인 음담패설을 떠들면서 하지만 서양사회에서는 숨어서, 그것도 지극히 간접적인 수법을 써서 해야 한다.그러나 공격성 조절문제에 닥치면 이제는 정반대가 된다. 우리는 양보하고, 참고, 또 참다가 마지막에 와서 그렇다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얼굴이 새하얘져 온 몸을 떨면서 덤비는데 이것이 서양사람 눈에는 「처음에는 비겁하게 가만히 있다가 뒤에는 지나치게 반발하는」 것으로 비쳐 꼭 어린애처럼 느껴진다. 서양사람들은 평소에도 적당히 공격욕구를 뿜어내며 산다. 예컨대 내 옷자락이 옆사람 엉덩이에 깔렸을 때 우리같으면 살살 눈치봐가며 몇번에 걸쳐 빼어내겠지만 그들은 대번에 확 빼는 것이 꼭 시비거는 사람같다. 토론이 붙으면 강하게 주장하고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비판하는데, 우리같으면 원수질까 두려울 정도다.

○서양인의 절도

그래서 한미통상협상에서 우리는 허를 찔리고, 뒤에 분풀이로 우리는 상대방대표를 「마녀」라고 불렀던 적이 있다. 서양서는 데모대가 경찰저지선을 넘어오면 공권력 유린으로 간주해 처참하게 박살을 내버리는데, 우리는 「너무 한다」고 거꾸로 경찰을 나무란다. 서양사람들은 공격적 본능을 발휘하고 조절하는 데서 이렇듯 원숙하다. 싸우다가도 쉽게 화해하는 것이 우리 눈에는 배알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날 독불은 밀월관계이고, 한일관계는 냉랭하기만 하다.

우리는 평소에 적당히 발휘하지 못해 축적되어온 공격성이 한 번 터지면 어디서 끝내야 할지를 모른다. 도중에 중단하면 비겁하다고 질타당할 것같아 겁을 낸다. 서양군대는 세 불리하면 항복도 잘하는데 우리 문화는 옥쇄를 강조한다. 그 큰 까닭은 육아과정에 있는데, 우리는 어린 자식이 떼 쓰고 부모에게 대들면 「뎃끼!」, 「고얀 놈」, 「아저씨가 이 놈 한다」라고 설명을 생략한채 윽박질러 기를 죽이는가 하면 반대로 방약무인하게 굴어도 「애 기 죽이지 말자」면서 웃고만 있다. 즉 어린이들의 공격성 발휘와 연마에 극에서 극으로 대처해 오히려 자식들을 혼동시키고 있다. 반면 서양부모는 자식이 떼를 쓰면 잘잘못을 가려주고, 설명해주고, 그래도 위반할 때는 매섭게 응징함으로써 절도를 알게 한다.

작금의 한총련 폭력시위는 그 무모한 정치구호 말고도 행동에 있어서 도를 지나친 바가 이만저만 아니다. 이들은 공격성 발휘를 어디서 끝내야 하는가를 모르는 집단으로, 공격성 미숙이라는 면에서 우리 문화의 치부를 극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학생들의 폭력시위를 막는 근본은 평소 우리가 갖고 있는 공격성 조절에 원숙해지는 것일 것이다.

○원숙해지는 길

첫째 대책은 어릴 때 교육을 잘 시키자는 것이다. 애가 떼를 쓰면 무조건 「뎃끼!」만 하지 말고 설명해주어야 하며, 분명히 가르쳤는데도 대들면 가차없이 응징하는 일관된 태도를 부모가 유지해야 한다. 또 토론문화를 키워 무섭게 논쟁하다가도 끝나면 스스럼없이 웃고 지낼 수 있음도 배워 이를 몸에 배게 하는 것인데, 이 길은 우리 당대에는 어려울 것이다.

두번째 대책은 당장 할 수 있는 것으로, 공권력으로서의 경찰을 국민 모두가 지지해주고 더 한층 받들어주자는 것이다. 경찰에 대한 화염병 투척을 나 개인과 국민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자는 것으로, 이런 면에서 총리와 교육부장관의 경찰병원 위문은 잘한 것이다. 경찰을 집권자의 하수인으로 보지 말고 우리 사회의 방위벽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번 정부도 집권 초기에는 공무원과 경찰을 과거 정권의 하수인으로만 보고 괄세한 적이 없지 않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처사였다. 이들은 하나의 기구다.

세번째 대책은 정신과의사로서의 분수를 넘어서는 민감한 부분인데, 할 말은 하겠다. 이는 상당수 식자층을 짓누르는 「말 달리며 독립운동을 못했었다」 는 자책감, 자괴심, 열등감에서 이제 우리 좀 벗어나는 것이다. 참고 견디며 선진기술을 배운 다음에 독립운동을 하려 했던 사람이나 투사를 숨겨주고 격려했던 사람들도 여유를 갖고 재평가해줄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뿐일까.<조두영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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