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묘미 찾기 안내서/현대시와 비교,옛시에 담긴 뜻 쉽게 풀이「고전」과 「한시」라는 지식의 숲이 있다. 갈수록 그 숲을 찾아가는 이가 드물어진다. 정민(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우리나라와 중국의 한시를 쉽게 풀이한 「한시 미학 산책」(솔간)을 냈다. 월간 시전문지 「현대시학」에 94년부터 2년가까이 연재했던 글을 묶은 이 책은 한시 350여수를 서정주 유치환 박목월 등의 현대시와 비교하면서 한시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선인의 정신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책에 실린 24가지 글 가운데 다섯번째 이야기 「한시의 정운미」대목에서는 이런 글이 눈에 띈다. 「신문에서 어느 조경학자가 우리나라 한시에 자주 나오는 초목의 빈도수를 조사하여 통계낸 결과를 발표한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은 소나무도 국화도 아닌, 바로 버드나무였다」 이 결과를 놓고 그 조경학자는 버드나무가 우리 생활공간 가까이 많았으므로 친근하게 시의 제재로 쓰인 것이 아니겠느냐는 상식적인 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정교수는 버드나무가 봄날의 서정을 촉진하는 환기물인 동시에 이별과 재회의 염원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버드나무가 빈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면 한시에 봄날의 서정이나 이별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제일 많다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가 된다고 설명했다.
교과서에 수록되어 잘 알려진 정지상의 한시 「송인」은 대동강가 연광정에 수없이 걸린 제영시중 하나였지만 중국 사신이 오면 모두 걷어치우고 이 작품만 남겼다고 한다. 그 이유를 둘째 구의 「송군남포」가 중국사람에게 일으켰을 심리적 공명과 「가, 다, 나, 하, 과, 파, 하, 과」등 운자 사용의 산뜻함으로 풀이하고 있다. 여기에 「고금소총」에 나오는 정지상과 홍분이라는 기생의 일화, 후인이 이 시에 보낸 찬사 등 주변이야기를 덧붙였다.
이 책은 결코 한시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만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역의 「입상진의」를 예로 들어 「옛사람의 글에는 야단스러움이 없다. 간결하게 할 말만 하고, 때로 아무 말 않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은 글자 사이로 흘러 행간에 고여 넘친다」고 한시의 묘미를 풀이하거나 당시와 송시에 대한 감상자의 호악(호오)를 순수시와 참여시에 빗대어 「시의 우열을 판단하는데는 우선 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밖에 없다」고 매섭게 지적한다. 한시를 해설하는 그의 문체는 재기에 넘쳐 있어 젊은 세대가 읽어도 부담이 없다.
정교수는 「지금과 옛날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옛것이 어째서 오늘에도 감동을 주는가. 1920년대의 시조부흥운동도 좋고, 이즈음의 생활시조운동도 소중하지만 형식의 복고에 앞서 이 흙 밟고 살아온 사람들의 가슴 속에 스민 정서의 원형질을 찾아 나서는 일이 우선해야 한다」며 「새롭고 풍성한 외국의 담론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지금 낯설기까지 한 선인들의 안쓰러운 시 사랑에 한번쯤 귀기울여 볼 여유가 이제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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