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학자 의상 사상 왜곡했다”/오자 투성이 일 불경 인용 용어부터 중대 오류/독창이론·수행과정에 근거도 없이 의문 제기/우리학계서 조차 무분별 재인용 현실 안타까워일본학계의 불교연구 권위자로 꼽히는 이시이 고세이(석정공성) 고마자와(구택)대 교수가 저서에서 한국화엄종의 종조 의상(625∼702)의 이론을 왜곡했다는 국내 학계의 비판이 일고 있다.
이시이 교수가 지난 2월 동아시아의 화엄사상을 집대성해서 펴낸 「화엄사상의 연구」(춘추사 간)는 국내 학계에서도 인용할 만큼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는 이 책에서 의상대사의 독창적인 이론과 수행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책을 검토한 원로불교학자 김지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65·종교철학)는 『제1부 제3장 「신라의 화엄」편은 근거없는 사실을 토대로 의상대사를 평가절하하고 있다』며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을 저자와 일본의 주요 신문사에 보냈다고 밝혔다. 중국화엄종의 제2조 지엄의 문하에서 수행한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는 668년 스승 입적 3개월 전에 「화엄일승법계도」라는 불후의 명저를 지었다. 이 저술에서 그는 「이인다라」(이치와 진리의 세계)와 「사인다라」(현상과 사물의 세계)의 개념을 정립, 「이이무애법계」(진리는 서로 상충됨이 없고 진리와 현상은 두개가 아니다)라는 독창적 사상체계를 세웠다.
김교수에 따르면 이시이 교수는 「이인타라니」 「사인타라니」식으로 의상대사가 사용한 용어 끝에 「니」를 붙여 표기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는 「인타라」와 「타라니」를 합성한 것으로, 정식 범어(산스크리트)에는 없는 엉터리 조어법이다. 이시이 교수는 이를 의상대사가 새 이론을 만들면서 의도적으로 합성한 조어로 추정한다. 그는 이에 더해 스승 지엄이 이런 파격적 조어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의상대사가 스승의 교시를 받아 「화엄일승법계도」라는 논문을 완성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저술을 완성했을 무렵(668년)에는 지엄이 앓아 누운 상태여서 이를 면밀히 검토할 수도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의상대사가 지엄에게 사사한 사실조차 의심스럽다는 것이 이시이 교수의 시각이다.
그러나 해인사에 소장된 「법계도기총수록」이나 균여(923∼973)가 지은 「법계도기원통기」 등에는 엄연히 「니」가 없는 「인타라」로 표기돼 있다. 김교수는 이시이교수의 착오가 오자 투성이인 일본불경 「대정신수대장경」을 인용한 데서 비롯됐다고 풀이한다. 신수대장경은 이시이 교수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전승과정에서 수많은 탈락과 오식으로 믿을 만한 텍스트가 못되는 자료로 알려져 있다. 김교수는 『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검토조차 없이 잘못된 용어를 토대로 의상대사를 왜곡한 것은 신라화엄종의 종주를 무시, 한국의 화엄사상 전체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73년 「신라화엄사상연구」로 일본 도쿄(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화엄논절요」 등의 저서를 내는 등 화엄사상 연구에 천착해 온 김교수는 『우리 학계조차 이 책을 무분별하게 인용하는 현실이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변형섭 기자>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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