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3,000m의 로키산맥 수목 한계선에서는 매서운 바람으로 나무들이 곧게 뻗어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자랍니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이 바로 이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영혼으로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도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었습니다」전철로 출근하던 날 플랫폼의 한쪽 벽면에서 본 글이다. 「지하철 사랑의 편지」였다. 등산길 약수터의 물 한모금처럼 달았다. 각박한 세상에 이러한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사랑의 편지 발행인은 기독교서적만을 고집해서 출판하는 규장문화사 대표 여운학씨(64)였다. 『그러면 그렇지, 전도가 목적일 거야』 그러나 섣부른 나의 예단은 여씨와의 통화결과 빗나갔다.
전도보다는 상처받고 소외된 현대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86년 일부 지하철역구내에 편지함을 만들어 놓고 사랑의 편지를 꽂아두기 시작했다. 반응은 좋았으나 편지가 없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91년부터는 지금처럼 타블로이드판 액자속에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고정시켰다. 지하철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130여개 전철역 상·하행선 플랫폼 두 곳에 「사랑의 약수터」를 만든 것이다.
보름에 한번씩 바뀌는 편지는 여씨와 교단작가인 오인숙씨(43), 시인 김성영(50) 김상길씨(42), 「10대들의 쪽지」발행인 김형모씨(40) 등이 번갈아 쓰고 있다. 내용은 생활주변의 얘기부터 동서고금의 교훈적인 예화, 우화까지 다양하다. 평범하고 쉬운 글들이지만 실의에 빠져 좌절한 청소년, 무거운 발걸음의 실직자, 생을 포기한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고 다독거려 재활을 돕고 있다. 5년동안 나붙었던 글 가운데 199편은 「지혜로 여는 아침, 지하철 사랑의 편지모음」이란 3권의 아담한 책으로 묶여 나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메신저 여씨는 『편지를 보고 힘을 얻었다는 이웃이 늘어 보람을 느낀다』며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종합병원 교도소 등 좀더 많은 곳에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사랑의 편지를 읽는 일은 조그만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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