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의 헌신」서 「일·결혼 양립」으로”/학생 금혼 학칙개정 검토할수도/법조계 등 전문직 진출 적극 지원/“개교 이념 「여성의 인간화」를 「인류의 인간화」로 발전시켜야”□대담=장명수 편집위원
이화여대는 오늘 총장 이·취임식을 갖고 윤후정 총장 후임으로 장상 총장을 맞이한다. 이날 장총장의 취임은 그가 이대의 첫 기혼 총장이란 점에서 특히 뜻 깊은데, 이화 1백10년사에서 설립자 매리 스크랜턴 부인을 제외한 역대 학당장 교장 총장등 10명이 모두 미혼이었다. 새 총장을 만나 「21세기의 대학, 설립 2세기로 접어든 이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 본다.
―이화의 첫 한국인 학장 김활란박사는 삼종지도만이 여자의 살 길이었던 그 당시에 독신을 선택하여 한평생 일에 헌신하는 여자의 또 다른 생을 보여준 선구자였습니다. 그후 김옥길 정의숙 윤후정으로 이어지는 이화의 미혼총장들 역시 일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제 기혼총장이 등장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화의 변화라기 보다 한국 여성과 결혼과 일의 관계가 변했음을 말하는 상징성을 갖는다고 봅니다. 일에 헌신하기 위해서 그밖의 모든 것을 희생했던 선배들을 거름삼아 오늘의 여성들은 일과 결혼을 무리없이 양립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기혼총장 시대가 왔다」는 표현은 적당치 않습니다. 이대의 총장 선출 규정에 결혼여부를 따지는 항목은 없으므로 앞으로 미혼총장이 나올 가능성도 열려 있지요』
○오랜 전통 축적의 결과
―이대는 6년전 교수들의 직접선거로 총장을 뽑았고, 이번에는 간선제로 총장을 뽑았습니다. 두번 다 갈등없이 큰 일을 치르는 것을 보고 「무서운 학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학교 책임자들이 사심없이 일한다는 것을 이화가족 모두가 믿고 있다는 것이 우리 대학의 힘입니다. 지도자의 능력이나 스타일에 대해 불평할 수는 있겠지만, 그가 사심없이 전력투구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요. 그런 분위기속에 역대 지도자들의 지혜와 경륜이 유실되지 않고 축적되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총장선출 방식을 놓고 갈등을 겪는 많은 대학들이 우리에게 비결을 묻는데, 그 힘은 하루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수한 여고생들의 남녀공학대학 선호가 계속되고 있는데, 여자대학이 존립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여자대학이 더 효율적으로 여성의 지도력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녀공학 대학에 입학한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여학생에 대한 대학의 기대와 성원이 같지 않다는 현실을 발견하고 움츠러들기 쉽습니다. 여자대학의 약점은 남자들과의 경쟁없이 여자들만의 울타리안에 안주하기 쉽다는 것인데, 그 점을 보완하려면 학생들에게 일찍부터 세 계무대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실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우리는 우수학생 유치와 파격적인 장학제도로 각 부문의 지도자를 키우고, 현재 80%선인 졸업생 취업률을 1백%로 높이기 위해 취업지도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2년전 마련한 「21세기 발전계획」에 따라 공대와 정보과학대학원을 설립하고, 국제학 및 통역대학원 설립을 추진하는등 변화하는 세계에 발맞추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여자대학의 인기는 2∼3년전부터 올라가고 있으며, 우리대학의 경우 신입생의 50%가 내신 1∼2등급이고, 85%가 수능점수 상위 5%안에 드는 우수한 학생들입니다』
○이화인증제 계속 추진
―이대의 사법고시반 집중지원은 여성법조인을 늘리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른 부문의 진출도 지원하고 있습니까.
『법조계에 진출한 동창이 20여명이고, 사법고시 수석합격자까지 나왔으니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여성의 전문직으로 어떤 분야가 바람직한가,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는 무엇인가를 조사하여 집중지원하는 것이 취업지도의 중요한 부분인데, 사법·행정·외무·입법고시등과 최근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언론사 취업반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외국어·사무능력을 학교가 인정하는 이화인증제에 계속 주력하고, 인가 신청중인 통역대학원이 문을 열면 국제전문인력 배출도 활기를 띨 것입니다』
―대학총장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총장들은 대학의 질적·양적인 발전을 추진하고, 돈을 모으고, 탁월한 비전을 제시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부문에 가장 주력할 생각입니까.
『이대는 21세기를 향한 도전과 창립 2세기로 접어든 새로운 다짐앞에 서있습니다. 그 두가지는 서로 이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1백10년전 미국의 선교사들이 이 나라의 억눌린 여성들을 위해 이화학당을 세웠던 정신속에 바로 세계화, 인간화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세계화는 경쟁력 차원에서만 강조되고 있으나, 우리의 목표는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 세계의 발전과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화의 2세기는 그동안 받은 세계의 도움을 되돌려주는 세기가 돼야하며, 「여성의 인간화」라는 개교이념을 「인류의 인간화」로 넓혀가는 세기가 돼야 합니다. 그런 노력의 하나로 제3세계의 여성지도력 양성에도 노력할 계획입니다. 21세기는 「여성의 세기」라고도 하는데, 남녀 통합 문명을 창출하여 변혁의 진원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편과는 11년간 동학
―부군인 박준서 교수가 연세대 총장후보에 올라 부부총장 탄생여부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가족은 선생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제가 이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신학과에 편입했을때 남편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신학과에 편입하여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후 예일대와 프린스턴대에서도 같이 공부했는데, 세학교에서 11년을 클라스메이트로 지내다가 헤어지려니 너무 섭섭해서 결혼했어요(웃음). 저의 오늘이 있기까지 어머니 두분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지요. 89년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잃고 삯바느질로 두 딸을 키우며 가난속에서도 큰 꿈을 품고 당당하게 사는 자세와 기독교 신앙을 물려주셨습니다. 시어머니는 1남6녀를 두셨는데 「내가 딸이 일곱인 셈 치자」면서 오늘까지 살림을 맡아주시고 두 손자를 키워주셨어요. 결혼한후 두 어머니를 한집에 모시고 살았는데, 너무나 사이좋으셨지요. 26년의 결혼생활에서 저는 어머니에게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만 하면 됐어요』
―기혼총장이 나올만큼 상황이 달라졌다면, 학생들의 결혼을 금하는 학칙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대의 금혼 학칙은 학생들이 가사부담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는데, 대다수의 학생들이 개정을 원한다면 검토해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현재 그 규정이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장상 총장 약력
▲1939년 평북 용천에서 출생
▲62년 이화여대 수학과졸
▲66년 연세대 신학과졸
▲70년 예일대 신학대학원 석사
▲77년 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 박사
▲77년 이대 교수로 부임. 학생처장 인문대학장 정보과학대학원장 부총장 등 역임
▲대한YWCA 부회장. 세계YWCA 실행위원. 세계개혁교회연맹 증언위 위원장 등 역임. 88년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안수
▲「바울의 역사의식과 복음」 「여성학이 신학에 미친 영향」 「한국문화와 기독교 윤리」 등 저서 역서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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