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심리자들 통해 병든 사회 단면 해부소설가 전상국씨(56)가 8년 동안 띄엄띄엄 발표했던 연작 4편을 묶어 중편소설집 「사이코」(세계사)를 출간했다. 「아베의 가족」 「우상의 눈물」 등의 작품에서 분단문제,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부조리를 파헤쳐 온 그는 이 소설집에서 이상심리자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사회병리현상을 해부한다.
때 묻은 인간 사이에서 유달리 번뜩이는 눈빛과 광기를 가진 사람은 미친 사람이 되기 쉽다. 자신의 시력이 나빠지는 것에 대한 보복으로 차를 몰아 무차별로 사람을 치고, 성폭행을 하려다 쫓긴다고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일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그들은 당당히 실존하는 사람들이다. 전씨는 「사이코」에서 이상심리를 가진 이들의 행태를 디딤돌 삼아 우리 사회의 추악한 모습을 은유적으로 까발려 놓았다. 그 심리의 발생조건을 구구절절이 따지지도, 치밀하게 이야기를 짜나가지도 않았지만 수면에 잠겼다 튀어오르는 빙산의 조각처럼 돌출적이고 베일에 싸인 행동묘사가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연작 첫 편 「사이코시대」는 소도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며 정신이상자인 처남에게 심리적으로 쫓기는 현세가 주인공이다. 뜬금없는 횡포와 남북통일 추진의 이상에 사로잡힌 처남 땡삐에게서 놓여나고자 그를 추방·감금한 현세, 무허가 기도원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다 결국 원생을 부추겨 탈출하는 땡삐, 감금되지 않았다 뿐이지 땡삐와 다를 바 없는 인격파탄자 만재등의 모습은 규범과 정상의 삶이라는 잣대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속물적인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거울의 알리바이―유다족」에는 가롯 유다의 악역을 자처하는 르포작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교통위반차량만을 추적하는 사이코 노상관, 명문 여대 메이퀸 출신의 무당으로 유력인사들과의 갖은 추문을 숨기고 있는 윤혜선 등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르포작가는 자살한 혜선의 일기를 추적하면서 만나는 사람을 통해 상류층의 추악한 행태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외곬수로 교통위반차량을 사진찍어 고발하는 의인 아닌 의인 노상관과 대비되는 타락한 상류층은 삶 자체가 비뚤어진 진짜 사이코로 설명될 수 있다. 이 밖에 복마전 정치판을 풍자한 「개미거미들의 화음」, 빈민촌 시인의 눈을 통해 일상의 부패상를 보여준 「시인의 겨울」이 실려 있다.
전씨는 『불신과 증오, 소외와 좌절, 억압과 굴복 등 광기의 모태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리려고 했다』고 설명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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