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진·선봉 개방땐 잘 살 수 있다” 선전/북한군 식량공급 양호 사기 높아/범죄 성행해 밤에 못다닐 정도박철호, 고준, 최승찬씨등 탈북자 3명의 기자회견 일문일답은 다음과 같다.
―군량미의 운영과 군사기및 북한군의 남침감행역량은.
(박)『군부대는 가끔 고통받는 적은 있으나 식량공급이 양호해 군의 사기는 높은 편이다. 김정일만 있으면 전쟁에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명령만 내리면 남침할 준비가 돼 있다』
―개성의 암시장실태와 군수품의 유출여부는.
(최)『개성은 자재난등으로 공장가동이 안돼 노동자들이 노임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장마당에 살림을 내다팔아 하루하루 먹고 산다. 노임은 20원이 채안되는 반면 지난해까지 1㎏에 60원하던 쌀값이 귀순당시 1백20원으로 올랐다. 장마당은 원래 1곳밖에 없었으나 최근 5개로 늘어났으며 군수품등 모든 물품이 다 이곳에서 거래된다. 군인들은 배급쌀로 술을 바꿔먹는 일이 많으며 장마당에는 군복, 군화등 군수품이 많이 나와 있다. 장마당 성행으로 인민폐가 시중에 많이 나돌자 지난 7월 국가가 화폐에 도장을 찍는다며 저축하도록 독려, 인민들의 돈을 빼내 많은 이득을 보았다』
○반체제 삐라 청년 적발
―삐라등 주민불만의 외부표출실태와 조직적 저항운동은.
○두만강 경비 삼엄해져
(고)『94년초 평남 성천군과 양덕군에 김모형제가 「김일성·김정일이 망할날이 멀지 않았다」「청년들은 일어나 싸우자」는 등의 삐라를 두차례 뿌리다 보위부에 적발됐다. 김정일체제이후 밤에 나다니지 못할 정도로 범죄가 성행하고 주민 불만이 높아졌다. 간첩 10명을 잡는 것보다 탈북자 1명을 막는 게 더 크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두만강의 경비가 삼엄하다. 김정일은 교화소 1년형의 범죄를 10년으로 만들 정도로 법을 세게해 주민불만을 사고 있다』
―곡창지대인 강원 김화군의 농사실태는.
(박)『농약공급이 안되고 있으며 기름보급도 1개농장에 1∼2톤나오다 3백㎏밖에 안나온다. 모내기도 늦어지는 등 올해 작황이 지난해보다 나빠 올해도 흉년이 들 것이라고 주민들이 걱정을 하고 있다』
―나진·선봉지역에 대한 주민인식과 북한의 대외적 유화움직임은.
(박·최)『나진·선봉이 개방될 경우 달러가 많아져 인민들이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으나 세계의 자본가들이 전쟁에 대한 위험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고 인민들이 생각하고 있다. 나진·선봉에 노동자가 많이 투입됐으나 최근 원거주지로 해산한 것으로 안다. 개혁·개방이 돼야만 북한이 잘살수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기본인식이다』
―보위부 밀정(정보원)의 활동과 특수부대 실상은.
○보위부 위상 크게 강화
(고)『김정일이 최고사령관에 취임이후 보위부의 위상과 권한이 최고로 세졌으며 지도원 1명당 남녀노소 30명의 정보원을 두고 있다. 지도원에 승용차도 내려보내고 정보원의 공작비도 하루 50원에서 3백원으로 크게 올랐다. 당 책임·조직비서까지 감시하는 등 보위부가 사실상 국가를 움직이고 있다. 감독지도원이 자리보존을 위해 당·국가 음모사건을 만들어 생사람을 잡는 일이 많다』
―식량공급사정은.
(고)『식량공급이 제대로 되는 곳은 평양과 김일성·김정일 사적지뿐이다. 장마당에 나도는 쌀은 거의 인민군대에서 유출된 쌀이며 인민들은 쌀이 모자라 풀을 섞어 먹는 반면에 남한쌀의 대부분이 군부대로 들어가 지하창고에 가득 쌓여 있다』<정진황 기자>정진황>
□귀순 3인은 누구인가
◎최승찬씨/북 특수부대 38항공육전여단 상사 출신
7월11일 강화도 해안으로 귀순한 최씨는 개성직할시 운학2동에서 출생, 개성시 운학인민학교와 보선고등중학교를 졸업한 뒤 북한군 특수부대인 38항공육전여단 2대대 3중대에서 복무하다 93년 상사로 제대했다.
귀순할때까지 3년간 개성 석비레벽돌공장 자재인수원으로 일했다.
아버지 최창학씨(63)와 어머니 이기옥씨(63)가 현재 개성시 운학2동에 살고 있으며 부인 김옥순씨(26)와 1남(2)을 두고 있다.<김상철 기자>김상철>
◎고준씨/보위부 정보원 역할… 제3국 통해 입국
95년 5월 두만강을 건너 제3국을 통해 귀순한 고씨는 평양시 모란봉구역 긴마을동에서 태어나 83년 평남 양덕남자고등중학교를 졸업한 뒤 양덕 가성소다공장노동자와 양덕 목재화학공장 운전수 등을 거쳐 95년 2월부터 귀순때까지 양덕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으로 근무했다.
고씨는 보위부 지도원 밑에서 밀정(정보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는 모두 사망했고, 90년 결혼한 최정희씨(28)와 1남1녀를 두었다.
◎박철호씨/식료수매원으로 일하다 한탄강 넘어와
7월24일 한탄강을 건너 귀순한 박씨는 강원 김화군 창도리에서 태어나 73년 김화군 원남리 고등중학교를 졸업했고 북한군 46사단 차수리소 수리공, 북한군 5군단 자동차운전양성소 전기공 등을 거쳐 91년 5월부터 귀순때까지 김화군 식료수매종합상점의 식료수매원으로 일했다.
가족은 강원 고성군 수산사업소 운전수인 아버지 박종순씨(64)와 어머니 김순녀씨(65), 96년 1월 재혼한 부인 김종숙씨(39)가 있으며, 자녀는 전처소생의 1남2녀와 재혼한 부인사이에 1남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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