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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과 추악함을 넘어서(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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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과 추악함을 넘어서(화요세평)

입력
1996.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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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분단으로 민족이 두 동강이 난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는 남북한이 당면한 현실과 민족의 장래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에 다다랐다. 분단과 함께 북한은 소련 군정하의 점령공산주의로 출발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북한지도부는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라는 이름으로 전투적인 「민족주의」정책을 실시해왔다. 주체사상은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고 변칙적인 조직론으로 왜곡되어 버렸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이 중·소의 틈바구니에서 미국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싹튼 민족주의적인 요소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한때 민족주의를 표방했던 비동맹 제3세계가 역사의 무대에서 크게 부각되었을 때 북한은 퍽 의기양양했으며 60년대까지만 해도 남한과의 단순비교에서 정치·군사·경제면에서 위협적인 존재였다.○남­내실 북­개방

그러나 70년대, 80년대를 지나면서 북한의 위상은 크게 약화했고 소련연방의 몰락에 이어 사회주의체제의 전면적 붕괴와 함께 북한은 체제 자체의 유지가 어렵게 되었으며 인민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8·15 광복이후 남한은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한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여 겨우 연명할 정도였으나 전쟁의 폐허를 딛고 외자 도입을 통한 수출주도를 국가목표로 하여 권위주의 주도하의 산업화를 이루어냈다. 반식민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통성도 약했고 민족자본의 결여로 종속경제라는 호된 비판도 받았다. 이러한 남한의 약점을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간파하고 있던 청년학생들은 한때 대한민국의 장래에 대해 절망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남쪽의 국민은 빈곤과 독재와 부패와 종속의 토양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의 꽃을 피웠다.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관점에서 봐도 지난 반세기간의 남북한의 경쟁은 남한의 판정승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남북경쟁 이라는 관점보다는 민족통합의 이니셔티브를 확고히 잡아야 하는 사명감이 더 중요하다. 오늘날 남쪽은 무책임할 정도로 자유를 누리고 있고 북쪽은 인민의 최소한의 자유마저 없는 폐쇄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근대적인 의미에서 가장 체계적인 평등사상인 사회주의가 만들어 놓은 평등은 결국 생기가 없는 빈곤의 평등으로 전락해버렸고 빈부의 격차는 엄존하지만 자유경쟁하의 중산층의 삶이 더 양질의 평등임이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과 북은 어떠한 삶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고통스럽지만 확실한 대답이 이미 나와 있다. 북한은 문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중국형이든 아니든간에 또한 그것이 체제붕괴냐 체제유지냐 하는 심각한 양자택일일지 몰라도 개방 이외의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남한도 이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라의 중심을 잡아나가야 한다. 분단상태하의 남한이 너무 야심찬 대외적 국가목표를 세울 필요는 없으며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남짓하면서 지나치게 외화에 들떠서는 안된다. 지금 여기서 대한민국의 최우선 과제는 우리 사회의 내실화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환경오염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이나 각종 안전장비의 정비없이 양질의 삶을 누리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내실화없는 세계화는 종이호랑이일 뿐이다. 남쪽의 내실화는 북쪽의 개방화만큼 절실하다. 북의 개방화와 남의 내실화는 상호 모순되지 않으며 통일과정에서 얼 마든지 상호보완될 수 있는 것이다. 국내정치의 내실화와 함께 통일과정에서 정책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그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인내와 관용으로

남과 북에서 새로운 의식과 운동이 일어나 북은 개방화, 남은 내실화를 추진해 나가야 하며 그 바탕 위에서 인내와 관용으로 민족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북쪽에서 굶주림으로 목숨을 건 탈출이 많아지고 남쪽에 후안무치한 「어글리 코리안」이 양산된다면 남북한의 공존공영은 커녕 한민족 전체의 공도현상이 걷잡을 수 없이 들이닥칠 것이다. 굶주림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체제와 지도부에 책임이 있고 추악함의 뿌리는 많은 남한사람들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

7,000만 민족의 각성과 다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최상용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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