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이탈리아 군법회의는 나치 친위대 대위 출신의 전범 에리히 프립케를 석방했다. 『민간인 학살에 가담했지만 하수인에 불과하고 일반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 석방이유였다. 그러나 분노한 여론에 밀려 8시간만에 그를 재수감할 수밖에 없었다. 프립케와 그의 변호사는 11일 재수감이 위법이라며 법무장관의 사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프립케는 그동안 줄기차게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반성의 빛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수한 생명을 불법적으로 짓밟은 그가 자기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준법」을 외치고 있는 데서 희생자들과 이탈리아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대규모 집단학살일수록 정작 직접 손을 피로 물들인 가해자들은 「집단」이라는 익명성 속에, 또는 「하수인」이라는 변명으로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거청산작업들은 하수인들에게도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가하고 있다.
종족간 내분으로 50만명 이상이 학살된 르완다는 10일 학살자처벌법을 통과시켰다. 학살혐의자 8만명을 심판하게 될 이 법은 하수인들까지도 처벌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유엔의 구유고 내전 전범재판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하고 있는 인종범죄 조사도 「수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인간존엄성에 대한 범죄에는 변명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 자신들의 행위를 뉘우치고 자백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대히 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자신의 행위로 자신도 고통받고 참회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도 당시 상황의 피해자」라는 관용의 논리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5·18 책임자에 대한 선고공판이 19일로 다가왔다.
이 재판에서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프립케의 변명만을 되뇌는 사람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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