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엔 목욕문화가 꽃을 피웠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때는 3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중목욕탕이 건설되기도 했다. 로마말기엔 향락의 도를 넘어 남녀혼욕이 일반화하는 퇴폐의 길을 치달아 로마멸망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같은 목욕문화는 점차 기독교문화와 충돌, 비판을 받게 된다. ◆서기 745년 로마교황은 공중목욕탕을 「죄악의 온상」이라고 금지시킨다. 이를 계기로 중세 유럽엔 공중목욕탕이 자취를 감춘다. 몸에 때가 많은 것이 신앙심이 깊은 증거로 높게 받들어지는 불결의 시대가 유럽에 찾아든다. 18년동안 얼굴을 씻지 않은 여자가 찬양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오늘에 전한다. ◆유럽에 목욕습관을 부활시킨 것은 십자군원정이다. 십자군들은 이슬람세계에 남아 있던 로마시대의 목욕문화를 가지고 돌아온다. 1292년 파리엔 26개의 증기목욕탕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남녀가 혼욕하며 목욕탕 물에 띄워놓은 널빤지 위의 술과 요리를 먹고 마시는 것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1538년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풍기문란을 이유로 남녀혼욕 금지령을 내린다. 이처럼 풍기문란의 대명사처럼 여겨 온 남녀혼욕의 한 형태인 「터키탕」을 정부는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했다. 여성단체 등의 반발속에 주한터키대사관이 자국의 명예훼손을 이유로 터키탕의 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80년대 중반 일본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제기돼 이를 「소프 랜드」(soap land)로 개명한 바 있다. 어째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십자군들이 이슬람지역에서 목욕문화를 다시 가져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터키가 6·25때 우리의 혈맹인 점을 생각해서라도 개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