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신(판쇈)」은 경제구조와 정신구조를 새롭게 하자는 뜻으로 60년대 중후반 중국의 문화혁명을 주도했던 구호이다. 이를 평범한 우리 말로 번역하면 「변신」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후반기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미국판 변신운동이 미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강력한 미국을 부활시키자는 호소가 그것이다. 「미국을 새롭게 하기」 「미국 재고」 「미국 재창조」등의 제목을 단 저서들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이제는 퇴색해버린 듯한 미국사회의 미덕을 새롭게 조명해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헤게모니는 70년대 중반이후 쇠퇴일로에 있었으므로 「위대한 사회」에 대한 국민적 향수가 이러한 경각심으로 표출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미국을 재창조하자는 일련의 몸짓에서 패권국의 여유와 관용보다는 조급함과 피해의식이 보다 선명하게 읽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미국은 세계의 화합보다는 자국 선전에 더 열을 올렸으며, 분열된 러시아를 상대로 더 많은 메달을 확보하는 데에 집착하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 한다. 자국선수에 대한 과도한 조명과 경쟁국선수에 대한 상대적 냉담이 세계언론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또한 테러 대응전략과 참가자를 보호하는 방식도 예전의 미국이 아니었다.○원점으로의 회귀
헤게모니의 쇠퇴와 함께 미국이 대국적 면모와 여유를 상실하고 있음은 지난 주 의회를 통과한 사회보장제도의 전면적 축소안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1930년대 뉴딜정책에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폐단과 시장경쟁의 냉혹함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하면서 국가주도의 공공사업과 함께 산재, 연금, 실업보험이 전격 실시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보장제도는 흔히 OASDHI로 통칭되듯 고령자, 장애인, 미망인, 아동보호 중심의 소극적 제도로 출발하였다. 그러던 것이 60년대 케네디의 민주당정권 출범을 계기로 「위대한 사회」를 향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미국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소득불평등, 범죄, 인종차별, 절대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범사회적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빈곤과의 전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모든 임금생활자에게 고른 혜택을 제공하는 유럽의 보편적 제도와는 달리 노약자, 소수인종, 빈곤계층 중심의 선별적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면모 때문에 미국은 자본주의의 패권국가라는 국제적 위상과는 걸맞지 않게 복지이념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행사해온 국가로 정평이 나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작은 정부를 고수하고 시민사회의 도덕적 복원력을 과도하게 강조해온 정치적 전통과 자유주의적 이념의 탓이 크다. 아무튼 민주당정권에 의하여 이제 겨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의 하위수준에까지 올라선 미국의 사회보장혜택이 40년만에 탄생한 공화당 주도의 의회에서 전폭적으로 삭감된 것은 금세기 인류가 발명해낸 가장 소중한 문화적 유산을 다시금 원점으로 돌리게 하는, 말하자면 세기의 반란에 해당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빈곤층과 노약자라고 할지라도 일하지 않으면 공공복지 수혜의 자격이 박탈되었으며, 사회보장의 평생 수혜기간도 5년 이내로 한정되어 「취업」이 사회보장의 절대적 기준으로 재설정되었다. 원래 사회보장은 취업과는 관계없이 사회의 5대악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공적 기제이자 시민적 권리라는 적극적 의의를 갖는데 이번의 수정안은 사회보장의 문명사적 본질마저 왜곡시키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어서 우려를 금치 못한다.
○한국 복지 어디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클린턴정부의 개혁의지는 공화당의 저항에 의하여 철저히 봉쇄되었다. 클린턴정부는 집권 4년동안 「위대한 사회」의 기반을 구축해온 민주당의 지배이념을 결국 무화시키는 정치적 반란을 강요받은 셈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하층민의 빈곤과 좌절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부유층의 경제력 강화를 위한 냉혹한 이념으로 변질된 것이다. 즉 미국의 변신은 「부국」을 위하여 「안민」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복지국가의 위기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보편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세계적 현상이지만 미국처럼 급선회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러한 급선회의 여파가 복지국가의 초기 단계에 놓여 있는 한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두렵다. 왜냐하면 한국은 미국처럼 공공복지에 대한 국가역할을 최소화하고 특히 성장우선주의에 의하여 복지이념의 발전을 과도하게 억제하여온 국가이기 때문이다. 현정부가 표방하는 「생산적 복지」가 시민적 권리로서의 복지를 홀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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