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패션계 지각변동 일으킨 「신동」/27세에 데뷔 현란한 원색·신선 감각으로 파격 연출/개업 첫해 800만불 매출 클라인 등 거장 아성 위협아이작 미즈라이(35)는 미 패션계의 「신동」이다. 나이가 어려서이다. 캘빈 클라인을 비롯한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이제는 나이가 든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다면 미즈라이는 이미 20대에 패션계에 충격을 던진 이단아였다. 그는 지금 베이비붐 세대 이후의 캘빈 클라인으로 표현될 만큼 기성 디자이너들을 위협하는 독보적 영역을 갖고 있다.
미즈라이의 데뷔는 문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88년 4월 뉴욕에서 가진 첫 패션쇼에서 그는 파격을 연출, 패션의 문법을 바꾸어 놓았다. 그때 나이 불과 27세. 독립 스튜디오를 차린지 1년 반만에 마치 「패션고시」의 수석합격생같은 화려한 등장이었다.
기존방식의 평범한 디자인이 몇차례 지나간 뒤 현란한 오렌지색 재킷으로 급전된 쇼의 무대.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장은 이를 두고 『마치 거대한 댐이 열리는 것 같아 몸을 떨었다. 이젠 더 이상 검은 색을 안입어도 되게 됐다』고 말했었다. 검은 색 일색을 못벗어나던 패션의 패턴은 미즈라이의 출현과 함께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여성패션에 다시 원색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쇼로 그는 미패션디자이너협회가 선정한 88년의 신인디자이너가 됐다. 또 다음해에는 이 협회의 최우수디자이너 상을 수상했다.
그의 디자인은 출처를 모를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미국 전통디자인의 틀이 유지되면서도 담대하고 상상력이 뛰어난, 그러나 「입을 수 있는」작품들. 단순하지만 신선한 감각의 디자인은 이후 미즈라이 패션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는 시리아 유대계 부모사이에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아동복 사업을 하던 부친밑에서 어려서부터 패션의 분위기를 몸에 익힐 수 있었고 모친은 뉴욕의 유명 부티크로 쇼핑갈 때마다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패션마인드를 심어주었다. 아버지가 사준 재봉틀로 10세때 자기 옷을 만들어 입는 소질을 발휘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15세때 이미 IS라는 브랜드로 자신의 디자인 옷을 팔기 시작했다. 뉴욕의 유명디자인 대학 파슨즈 디자인 스쿨에 다니면서도 그는 동급생들보다 월등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87년 독립하기 직전까지 캘빈 클라인에 발탁돼 문하생으로 있었다. 맨해튼의 예술촌 소호(SOHO)에 스튜디오를 차리자마자 그의 옷은 한해 8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만큼 여성들의 감각을 사로잡았다.
한때의 스승 캘빈 클라인이나 이브 생 로랑이 이제는 경쟁자가 됐지만 스스로는 『나는 그들과 경쟁을 하지 않는다. 그들보다 영리해지려 할 뿐이다』라고 말한다.<뉴욕=조재용 특파원>뉴욕=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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