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법정최고형인 사형과 무기징역형이 구형된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먼저 12·12와 5·18사건이 난지 장장 16년 만에야 온갖 우여곡적끝에 신군부측의 국권찬탈혐의가 이처럼 사법적으로 단죄되기에 이른 것은 진정 역사적이라 할 만하다. 아직 재판부의 선고와 확정판결 과정이 남았다. 하지만 검찰의 이번 중형구형만으로도 성공한 쿠데타도 결국은 단죄되고 만다는 엄숙한 사법적 이정표를 확립시키고 생생한 역사적 교훈을 남기는 뜻이 있음을 누구도 부인치 못할 것이다.
이번 재판의 결심과 구형은 잃어버렸던 지난 5·6공시절의 왜곡되었던 역사와 사회정의를 되찾는 것외에도 또 다른 여러 의미를 갖고 있다. 우선 전직 두 대통령의 천문학적 비리에 대해 그들의 「통치자금」주장을 일축하고 뇌물로 단죄, 추징형을 병과구형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던 정경유착을 단절시키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맺힌 한을 풀어 주고, 전직 두 대통령마저 한꺼번에 나란히 단죄함으로써 준법정신을 제고시키면서 사법부와 검찰의 독립성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을 것도 아울러 기대되어 왔던 것이다.
이같은 역사성과 국민적 기대에 걸맞지 않게 이 사건처리가 그동안 파행과 표류를 거듭해 왔던 것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민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역사적 심판에 맡기자」라는 천명에 이은 검찰의 기소유예(12·12사건)와 공소권 없음(5·18사건)결정, 그리고 헌재(헌재)에서의 헌법소원을 둘러싼 해프닝과 전격적인 특별법제정으로의 방향선회등 우여곡절의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3월11일 드디어 첫 재판이 시작된 이후에도 검찰이 신군부측 군사반란과 내란에 의한 국권찬탈범행 및 뇌물비리를 수사·거증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신중치 못한 자세를 보여줬는가 하면 재판진행과정 역시 순탄치 못했다. 국권찬탈 혐의입증의 결정적 증인인 최규하전대통령의 증언청취나 5·18광주학살 책임소재의 구체적 거증에도 실패했으며 뇌물을 주거나 감춰준 재벌을 감싼다는 소리도 나왔던 것이다.
비록 전술적 구석이 엿보이긴 했지만 16년 만의 이런 엄청난 재판에서 변호인단의 퇴정과 사퇴소동, 그리고 결국은 국선변호인들과 함께 1심 재판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 등은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역사적 교훈을 남기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재판이라면 재판부나 검찰도 좀더 독립적이고 철두철미하게 반국가적·반역사적 혐의를 입증하고 신중하게 재판을 진행해 주길 국민들은 기대했던 것이다.
1심구형이 내려진 지금부터가 사실은 12·12와 5·18사건에 대한 사법적 단죄의 시작이다. 사법부와 검찰은 이번 재판의 역사적 의미를 살려내는데 더욱 진력하기 바란다. 물론 피고인들도 좀더 겸허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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