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끊고 작업실 칩거 밤샘 구상 3년만에 탈고/소매치기 꼬마와 낚시노인 만남 통해/속세 초월한 동양적 선의 인생관 그려춘천으로 가는 길은 만원이다. 형광색 반바지에 배낭을 꾸린 젊은이들이 경춘선 통일호 열차를 가득 메우고 있다. 회색 빛에 지친 이들이 잠시나마 안식을 찾는 호반의 도시 춘천에 사는 기행의 소설가 이외수씨(50)가 최근 새 소설 「황금비늘」을 탈고했다. 92년 「벽오금학도」 이후 처음 선보일 장편이다.
내는 책마다 어김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문학적 인기에다 산발한 머리와 수염, 대마초흡연 등 문학 외적으로도 주목받았던 그를 3일 하오 늦게 강원 춘천시 교동 춘천성심병원 근처 자택의 작업실 「격외선실」에서 만났다.
『긴히 사람 만날 일이나 밤낚시를 빼고는 집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오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소일을 하고 글은 저녁 8시부터 아침 6시까지 쓴다. 밖으로 다니다 보면 생각이 흐트러지기 쉽고 낮에는 사방 기운이 들떠 있어 올바른 정신집중이 어렵다. 이번 소설은 최근 3년 작업의 갈무리인데 술은 소설구상과 함께 끊었다』 방문이 감옥에서나 볼 철문인 것을 제외하면 의외로 깨끗한 작업실에서 그는 이번 작품이 기왕에 자신이 썼던 「이상향 소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특별히 현실성이 강하다고 이야기했다. 「벽오금학도」가 환상적 수법을 적극 활용한 소설이라면 이번 소설은 어두운 현실에 뿌리내린 아웃사이더가 인생의 큰 의미를 찾아 떠나는 내용이다.
소설에는 12세짜리 꼬마 소매치기 동명이와 낚시도사 무간조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보육원에서 살다 도망쳐 나온 동명은 독립군 출신의 양아버지에게서 소매치기기술을 배워 살아가는 고아이다. 하지만 제 입에 풀칠하자고 닥치는 대로 남의 돈을 훔치라고 배우지는 않았다. 핸드백이나 양복을 찢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땀을 저버리는 짓이다, 상류층 유한족의 돈만을 훔쳐라, 필요 이상의 돈은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양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 서울 대형백화점을 일터로 삼던 꼬마 의적 동명은 경찰에 쫓겨 춘천으로 잠행하게 되고 낚시의 달인을 자처하는 주정뱅이 노인을 만난다. 노인과 함께 다니며 동명이 인생을 훔치고, 낚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줄거리이다.
「황금비늘」은 안개 속을 헤엄쳐 춘천을 둘러싼 댐을 넘나드는 신비로운 물고기 무어의 비늘을 일컫는다. 무어는 소설에서 인간의 얕은 꾀가 만들어낸 벽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힘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20여일 전부터 비문증이라는 눈병이 나타났다. 녹차를 마시려다가 먹물이 빠져있는 줄 착각했다. 수정체에 먹물이 뿌려진 것 같은 얼룩이 지는 노환이라고 한다. 소설 한 편 쓰고 양쪽 눈을 다 못쓰게 되어선 안되겠지만, 한 쪽 정도야 내줄만 하지 않겠나』 속세를 뛰어넘는 순수한 사람을 통해 선의 인생관을 설파하는 이씨의 소설은 문장에 흘러넘칠 듯 담겨 있는 감성과 잰체하지 않는 대중성이 강점이다. 이번 소설 역시 물질과 현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동양적인 초월적 사유의 힘을 보여준다. 그는 최근 계간 「한국소설」에 시 3편을 발표하는 등 한동안 뜸했던 시쓰기에도 정성을 쏟고 틈틈이 선화와 유화를 그린다.<춘천=김범수 기자>춘천=김범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