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뛰어넘는 신세계음악 “개척자”/러시아·서구음악 접목 민주화된 조국 시대정신 반영/바이올린주자서 변신… 구 소 시절 망명유혹 뿌리치기도파벨 코건(43)의 음악에는 웅장하고 장엄한 러시아의 전통이 살아았다.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코건은 바이올린 연주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70년대 유럽 망명의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 음악 전통의 풍요로움속에서 나를 찾지 못하면 나의 존재가치가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매년 10월부터 시작되는 모스크바의 새로운 연주회 시즌은 그가 지휘봉을 힘차게 흔들면서 개막하고 팬들은 수많은 악기를 하나로 모아 「자연의 소리」를 창조해내는 그의 지휘에 넋을 잃는다.
그의 재능은 45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110여년 전통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에 버금가는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 놓은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바이올린 주자와 지휘자로 「1인 2역」을 하며 그는 이제 러시아 음악의 틀을 뛰어넘는 작업에 착수했다. 96∼97년 음악시즌이 개막되면 브람스 교향곡 1·2번과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하며 러시아의 전통과 서구 음악을 접목시킨 새로운 음악세계를 펼쳐갈 예정이다. 이 작업은 민주화 개혁으로 바뀐 러시아의 시대문화와 사회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며 21세기를 향한 용틀임이다.
그의 음악적인 자질은 어릴때부터 나타났다. 12살때 구소련의 공훈예술가인 아버지 레오니드 코건과 함께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서 바이올린을 협주, 박수갈채를 받았고 17세가 되던 70년 헬싱키의 시벨리우스 국제바이올린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었다. 지휘자로 변신한 이후 그는 또 음악의 본고장 오스트리아와 호주 유고 등에서 상임 혹은 객원지휘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를 만든 것은 재능보다는 노력이다.
『음악가 집안에 태어난 나는 가진 능력보다 더 나은 결과를 요구하는 주변의 높은 기대속에 자랐다. 나는 이에 부응하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그에게도 좌절의 순간은 있었다. 세계적 바이올린 연주자에서 지휘자로 변신을 꾀하던 30대 초반 구소련당국이 그에게 느닷없이 해외여행금지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를 구해준 이는 이제는 고인이 된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당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었다. 므라빈스키는 코건을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발탁, 다시 해외공연에 나갈 수 있게 했다. 암울한 시절을 이겨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지휘자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게 한 므라빈스키를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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