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역사·인물화로 세계화단 주목/천연색료 사용 배채기법 맥잇기 미·영서 호평 한국화가 김호씨(39)는 삼복더위에나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작업실에 에어컨이나 난로를 켜놓지 않는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선비정신과 뼈아픈 근현대사를 편안하게 그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부인이 운영하는 어린이미술교실을 겸한 「찜통화실」에서 매일 10시간 이상씩 그림에 몰두하는 그는 요즘 어느 때보다 손놀림이 바빠졌다. 13∼27일 동산방화랑에서 여는 개인전의 마무리작업을 해야 하는데다 10월∼97년 1월 아시아소사이어티 갤러리와 뉴욕 퀸스미술관 등에서 열리는 「아시아 현대미술전」에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한국화작가로는 유일하게 초대받은 이 전시에서는 그의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심포지엄까지 열린다.
그의 미국전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87년 뉴욕 갤러리코리아에서의 「오늘의 한화」, 93년 퀸스미술관의 「태평양을 건너서」등의 기획전에 참가, 호평을 받았다. 특히 한국작가 22명과 함께 출품한 「태평양을 건너서」전 개최당시에는 뉴욕타임스에 「항거―황 희」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그 후 미국에서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대영박물관에서 작품구입의사를 밝혀와 값을 조정중이다.
홍익대 동양화과 4학년때 한국일보사 주최 한국미술대상전 장려상을 받으며 등단한 그는 남천 송수남을 중심으로 한 수묵화운동에 참여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정확한 데생과 발묵, 먹의 농담처리에 탁월한 기량을 보인 그가 역사기록화와 초상화작업에 나선 것은 86년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당신의 초상화를 본 아버지의 『왜놈그림같다』는 혹평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직장(금란여중)도 그만두고 일제시대이후 맥이 끊기다시피 한 전통초상화 재현에 나섰다. 미술관과 사당, 개인의 소장품 등을 찾아다니며 인물화기법을 연구했다. 독립운동가였던 고조부의 생가에 머무르며 구한말 화가 채룡신이 초상화를 그릴 때 사용한 천연색채제조법을 실험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체득한 기법중 하나가 19세기 중반이후 사라졌던 배채. 화면 뒤에서 선과 색을 입혀 앞면으로 은은하게 배어나오게 하는 이 기법으로 그는 지난해 성철스님을 「환생」시켰다. 색깔도 연지벌레, 감 등 천연재료를 통해 30여 가지를 개발해냈다. 역사인물화에서는 그 인물의 태를 묻은 터의 흙이 피부질감을 가장 잘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아내기도 했다.
그가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개인전에서 선보일 작품은 안창호 여운형 홍범도 문익환 윤이상 김수환 박경리등 20여명의 초상화 38점. 『김홍도와 정선의 시각에서 오늘의 모습을 그리는 게 목표』라는 그는 『앞으로 동물화에 매진한 뒤 80∼90년 민주화운동사를 그림으로 엮어 보겠다』고 말했다.<최진환 기자>최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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