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인도네시아에 부는 바람(장명수 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에 부는 바람(장명수 칼럼)

입력
1996.08.02 00:00
0 0

28년에 걸친 수하르토의 철권통치 아래 숨 죽이고 있던 인도네시아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수하르토의 통치가 길어질수록, 그 일가의 부패가 심해질수록, 세계의 시선은 점점 불안해지고 있었다. 2억 인구를 가진 나라가 요동칠때 엄청난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때문이었다.같은 과정을 경험한 우리가 인도네시아를 바라보는 감정은 좀 더 특별하다. 오랜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가. 얼마나 극심한 공포와 갈등을 견뎌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그들에게 동질감과 깊은 연민을 느낀다.

한국의 민주화 투쟁이 절정에 달했던 80년대 후반, 나는 몇차례 인도네시아를 여행했다. 수하르토의 권력은 요지부동이고, 사람들은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으나, 한국의 민주화 투쟁에 대한 열띤 관심은 그 나라의 변화가 멀지 않음을 예감케 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한국의 학생 시위에 그들은 대리만족과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시골에서 만난 택시운전사나 대학생들도 『김영삼. 김대중이 최고』라고 엄지 손가락을 흔들고, 『그들중 누가 대통령이 되겠느냐』고 물었다. 김영삼. 김대중씨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인기높은 민주투사였다. 그들은 수하르토에 대한 질문에는 입을 다물었지만, 한국사태에 대해서는 알고 싶은 것이 많았다.

86년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독재가 막을 내릴때 우리가 느꼈던 대리만족과 열렬한 관심을 그들은 한국에 쏟고 있었다. 특히 87년 대선에서 누가 이길 것이냐는 궁금증은 대단했다. 지금 수하르토대통령은 98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인사들을 무리하게 탄압하여 반독재 투쟁을 격화시키고 있는데, 이미 장기독재 말기의 혼돈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수하르토는 68년 군의 지지를 등에 업고 집권하여 경제개발에 어느정도 성공했으나, 경제발전의 산물인 국민의 민주화 욕구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는 집권초 70달러이던 1인당 국민소득을 1,000달러 선으로 끌어 올렸지만, 온가족의 부패와 최근의 경기악화, 야당 탄압으로 민심을 잃게 됐다.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군부가 시위진압에 투입되고, 시위대에 대한 발포명령이 내려진 가운데 인도네시아에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 나라의 민주화가 어떤 속도로 진행될지, 어떤 우여곡절을 겪게 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확실한 것은 신문보도처럼 수하르토의 운명이 국민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순조롭게 스스로 권력을 놓을 시기를 놓친 것 같다.

달이 차면 기울고, 욕심이 과하면 죽음을 낳는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피를 적게 흘리고 그 진리가 이루어지기를, 죄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빌고 싶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