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기업도 가계도 흥청망청/성장·물가·수지 적신호에도 “나몰라라”/위기불감증이 진짜 위기/어려운 지금이 거품제거 적기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부자가 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정부건 기업이건 가계이건 한결같이 스스로를 선진국의 부자국민으로 믿고 행동하고 있다. 실상을 압도하는 부풀려진 허상, 즉 거대한 「거품」이 경제활동 나아가 일상생활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성장 물가 국제수지 등 경제지표들은 지금 일제히 위기의 적신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거품」에 길들여져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제주체들의 생각과 행동에 있다. 추락하는 우리 경제의 회생을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걷어내야 할 「거품」의 실상을 긴급 진단한다.<편집자 주>편집자>
얼마전 한 민간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의 소비실태에 관한 흥미있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과 미국가정의 가전제품 교체주기를 비교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평균 7.1년에 한번씩 컬러TV를 새 것으로 바꾸고 세탁기도 6년에 한번꼴로 교체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한번 구입한 컬러TV와 세탁기를 적어도 각각 11년 13년은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의 40%수준이고 총 경제규모는 16분의 1에 불과하다.
누가 봐도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지만 정작 보통가정의 씀씀이에서 우리가 미국을 배나 앞질렀다는 것은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의 소비행태는 이미 세계 정상급에 와있다. 한잔에 5천원짜리 커피를 스스럼없이 마시고 가족과 저녁 한끼를 먹으면서 10만원이 넘는 돈을 쓴다. 수십만원짜리 옷과 신발을 초등학생 자녀에게 입히고 하루저녁 술값과 팁으로 몇백만원을 쓰기도 한다. 흥청망청식 소비주의는 국경을 넘어 올 상반기 여행수지에서만 우리나라는 이미 1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소비 자체를 적대시할 이유는 없다. 소비가 왕성해야 기업생산도 활발하고 경제도 꾸준히 성장한다. 근검 절약이 윤리적으론 타당해도 경제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소득을 넘는 지출, 계획과 목적이 없는 소비, 과시와 충동 모방에 의한 천박한 돈잔치에 있다. 소비는 미덕이지만 과소비는 해악이다. 이미 소비지출증가율은 소득증가율을 넘어섰고 저축률은 20%대로 곤두박질했다. 소득은 천차만별인데 소비는 모두가 부자같은, 외양만 요란한 전형적 「거품증후군」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거품은 소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산 수출 투자등 모든 경제활동, 정부 기업 가계등 전경제주체 주변에 이미 만연해 있다. 그리고 「거품」은 국민의식으로 침투, 전 사회분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한국기업의 상징인 30대 재벌그룹을 보자. 이들은 자산총액만 우리나라 한해 예산의 5배(2백87조원)에 육박할 만큼 거대한 경제력을 갖고 있지만 이중 자기 돈(자본)은 고작 20%이고 나머지 80%는 모두 빚이다. 빚은 곧 거품이고 거품으로 포장된 외형은 과시용으론 몰라도 경쟁무기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정부도 거품병에 깊게 빠져있다.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만들고 건수를 채우기 위해 규제를 풀면서 소중한 국민혈세를 축내고 있다. 거품으로 가득찬 크고 비효율적인 정부다.
그러나 이젠 그 거품을 빼야 할 시기가 됐고 늦출 여유도 없다.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은 『거품은 이제 단순한 자산가치변동 차원을 넘어 국가와 국민전체의 사회병리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거품제거는 지금처럼 경제가 어렵고 힘들때가 적기』라고 진단했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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