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정보화 기여 “인터넷 황제”/웹 검색 SW 대명사 네비게이터 개발/시장석권 “무서운 20대”지난해 8월9일. 미국의 인터넷 접속프로그램 제작회사 넷스케이프사 부사장 마크 안드리센(25)이 새벽 3시께 잠자리에 든 것은 여느날과 마찬가지였다. 매일 이 시간까지 작업구상을 계속하고 E메일 등을 처리하느라 컴퓨터앞에 매달려 있는 것은 그의 변함없는 일과에 속한다.
안드리센은 이날 상오 11시께 침대옆 컴퓨터앞에 다시 앉았다. 평소엔 관심이 없었을 주식시장 상황을 검색하기 위해서였다. 컴퓨터 모니터는 주당 28달러로 상장된 넷스케이프사의 주식이 시장이 열리자마자 71달러에 거래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밤 사이 안드리센은 5,800만달러를 번 백만장자가 돼 있었다.
그리고 업계에는 실리콘 밸리의 신화가 또하나 탄생한 날이었다. 이 신화는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에 버금갈 만한 혁명적 신화로 여겨졌다.
사실 안드리센이 「무서운 아이」로 주목을 받은 것은 이미 94년부터였다. 정보통신시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터넷을 일반대중에 폭발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안드리센은 컴퓨터 화면속에 마우스를 지정한 뒤 단추만 누르는 방식으로 웹 검색을 자유롭게 한 「모자이크」프로그램을 처음 만들었다. 모자이크는 바로 요즘 웹 검색 소프트웨어의 대명사가 된 내비게이터의 전신이다. 빌 게이츠는 「PC의 황제」로 불리지만 모자이크가 나왔을 때 안드리센에게는 이미 「인터넷의 빌 게이츠」라는 별칭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처음 그는 일리노이 대학의 대학원생으로 국립 슈퍼컴퓨팅기술센터에서 시간당 6.85달러를 받고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한 학생연구팀의 팀장이었다. 94년 4월 그는 다니던 실리콘 그래픽스사를 때려치우고 인터넷시장의 노다지를 일찍이 깨우친 짐 클라크와 손을 잡았다.
전자우편을 통해 의기가 투합한 두사람은 안드리센의 후배 한명을 포함, 단 3명의 직원으로 넷스케이프사를 설립했다. 자본금은 사장 클라크가 끌어들인 400만달러가 전부였다. 안드리센은 기술담당 부사장으로 모자이크 프로그램을 보강해 내비게이터로 명명한 제품을 내놓았다. 이는 순식간에 웹시장을 70%나 석권했다. 인터넷의 혁명이었다.
신장 193㎝의 거구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헐렁한 셔츠 차림에 부츠를 질질 끄는 전형적인 X세대. 주식이 불어 백만장자가 됐지만 정작 본인은 『외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정도』밖에는 자신의 부를 실감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실제 같이 살던 여자친구와 불독 한마리를 데리고 지난 3월에야 방 3개 짜리 집으로 이사한 「소박한 거부」이다.
인터넷의 「안드리센 천하」는 그러나 올들어 빌 게이츠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얼마전 빌 게이츠가 인터넷도 석권하겠다고 회사방향의 대선회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보통신시대 21세기는 제2, 제3의 안드리센이 끌어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뉴욕=조재용 특파원>뉴욕=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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