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에서 이름을 남긴 작품들은 물론 독자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런 곡을 만든 작곡가의 세계는 전체를 조망해보면 규모나 깊이에서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가령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와 무소르크스키의 작품세계는 「우열」을 따지지 않더라도 스케일에서 서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연주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레퍼토리에서 이것이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다. 즉 작품세계의 스케일이 큰 작곡가는 그만큼 어느 연주에서나 자주 대할 수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연주 횟수로 보아 연주가 생활화해 있는 듯이 보이지만 레퍼토리는 상당히 폭이 좁아 어느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없다. 모차르트도 그런 예에 속한다. 모차르트라면 우리나라에서 좋아하는 「신동」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먼저 머리에 떠오를 뿐 그의 작품이 올바르게 연주되는지도 의문이고 그의 수 많은 작품이 아직 연주되지 않고 있다. 오페라의 경우 몇몇 중요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기는 했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공연을 보기 힘들다. 물론 작품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작품에 대한 성의도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런가하면 모차르트를 레퍼토리에 넣었을 경우 듣는 사람들이 「쉬운 것」 한다고 여길까봐 기피한다는, 참으로 기이한 해명을 들은 적도 있다. 레퍼토리의 불균형은 다른 대작곡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아직도 들어야 할 것이 너무 많이 알려지지 않고 남아 있다.
이런 현상은 공연을 기획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애로점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공통적인 주제 아래 여러 연주자들이 모여 연주하는 외국 페스티벌 같은 성격의 연주는 우리나라에서 실현되기가 어렵다. 물론 몇 년씩 앞을 내다보고 기획하지 못하는데도 문제가 있으나 우선 레퍼토리를 폭넓게 지니고 있는 연주자들이 드물다.
세분화 다양화 전문화가 되어 있지 않은 뿌리는 한 학기에 한 두 곡 정도나 소화하는 교육에서부터 찾아야 하겠지만 레퍼토리의 폭이 좁은 것은 결국 연주자들의 안이함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별로 프로그램 구성에 신경쓰지 않고 만들어내는 단적인 예가 「아리아의 밤」 같은 것이다.
대중에게 친근한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런 안이함을 적당히 얼버무리는 대답이다. 그러나 「요리」의 맛이 있으면 먹는 사람은 처음 대하는 것이라도 싫어하지 않는다.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의무를 행하기 위해서라도 연주자들이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조성진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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