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들은 본사 사옥 층계참 벽마다 걸려 있는 고 백상 장기영 한국일보 창간발행인의 어록 12개를 언론인의 징표로 삼고 있다. 지난 26일 저녁 5층과 6층 사이에 있는 그분의 어록 「한국일보정신은 칠전팔기의 정신이다. 창간일의 6과 9자 그것은 쓰러지면 또 일어나는 오뚝이와도 같지 않은가」를 보면서 13층 라운지 송현클럽에서 열리는 조촐한 출판기념회에 올라갔다.주인공은 지난 11일자 본란에 소개했던 후배로 91년 11월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기 전까지 한국일보에서 대기자를 꿈꾸던 장병욱씨(32). 「메아리」에 익명으로 기사가 나간 뒤 그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 정화여상고 조재후 교장 같은 이는 훈화자료로 쓰겠다며 보충설명을 원했다. 일부 여성잡지는 3개월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교대로 밤새워 병상을 지킨 친구 14명의 눈물어린 간병일지를 기사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출판기념회에서 선배 동료들은 오뚝이처럼 일어난 그가 끔찍이도 좋아하던 재즈에의 갈증을 풀며 건필을 과시한 「재즈 재즈」(황금가지간)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재즈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벌써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재즈탐구에 몰두해 온 저자가 마음속 끼를 마음껏 발동시켜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선율처럼 영혼으로 썼기 때문이리라. 친구가 통나무처럼 누워만 있을 때 간병조들은 일지에 「음악은 우리들의 딴따라 장병욱에게 확실한 효과가 있다. 신기하게도 음악만 들려주면 고통이 가라앉는듯 눈을 감고 잠을 잔다」고 기록했었다. 그 장병욱은 꽃다발을 받은 뒤 쑥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답사했다. 『재즈의 체계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이제 막 문지방 위에 올라선 느낌입니다. 이런 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서울대 동문으로 거의 매일 병원에 개근, 간병조장격이었던 한국일보 이주엽기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간병하는 동안 오늘과 같은 좋은 날이 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고 말했다. 그날의 주인공과 동료들은 출판기념회를 마친 뒤 밤늦게까지 뒤풀이를 하면서 인생과 신문과 재즈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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