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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할 수 있는 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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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할 수 있는 일(화요세평)

입력
1996.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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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부 연구기관들이 97년 경제전망을 발표하자 언론매체들은 기다렸다는듯이 거의 예외없이 비관론으로 기울고 있다. 금년 경기 연착륙을 장담했던 정부의 예측이 다소 빗나가자 내년 역시 전망보다 더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일종의 불신감이 작용하는 것 같다.한 예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측 내용을 보면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금년의 경우와 비슷해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 연 성장률에 있어서 금년과 비교되는 7% 내외는 그간 학계·연구계에서 많은 사람이 주장해온 잠재성장률(6.5% 수준)을 오히려 상회한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 역시 금년과 같은 4.6% 이하이다. 다만 경상수지 적자폭은 약간 확대될 것 같다. 경기전망이 불안할 때마다 흔히 등장하는 위기론은 무엇보다도 침체국면이 더욱 심화하는 과정으로 접어든 것이 아닌지 하는 불안과 함께 정부가 뚜렷한 단기처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확고한 입장에도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고속성장에 젖어있는 한국적 타성이나 정부개입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또 한 번 말해준다.

○구조조정의 참뜻

사실, 현 여건에서 외환시장개입을 통한 환율조정, 경상수입 제한 또는 수출 지원 등 과거 정부가 즐겨 택했던 정책수단들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대외적 여건 변화(예컨대 WTO 체제의 출범이나 OECD 가입을 전제로 한 금융·자본시장 자유화 등)에 따른 제약 뿐만 아니라 이러한 단기적 조치가 또다른 부작용이나 왜곡을 경제에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금년 경제운영이 차질을 빚기 시작한 것은 반도체 및 자동차 등 소위 일부 전략품목의 수출이 부진하면서부터이다. 물론 엔화 가치 및 국제수요 하락과 같은 단기적 현상이 그 중요한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도 몇 개 품목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단선적인 수출구조 그리고 국내 산업구조 조정 노력의 부족에 있다고 믿는다.

일본의 경우를 보자. 엔고에 따른 산업공동화 추세를 막고 산업 전반에 걸쳐 생산성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95년 3월 사업혁신법을 제정했다.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이 법은 50∼60년대 고도성장기 이후 처음으로 폭넓은 산업지원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법은 일정 기준에 해당되는(따라서 WTO가 허용하는) 165개 업종에 대하여 세제·금융상의 혜택제공을 규정하고 있다. 단순한 산업간 조정이 아니라 산업내 및 기업내 조정을 거쳐 비교열위 부문이라 하더라도 시장경쟁을 위하여 고부가가치화와 경쟁력제고를 유도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국내에서는 산업구조 조정을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몇 개의 첨단산업 육성으로 종종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진정한 의미는 전 산업의 첨단화 그리고 제조업 부문간 및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간 가치 사슬적 연관체제의 추구에 의한 경쟁력 강화를 실현하는 데 있다. 이에 따라 사양산업으로 경시해온 섬유 신발류 등 전통산업 역시 정보, 지식, 디자인 및 아이디어 집약적 산업으로 탈바꿈하여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다음, 최근 사치성 해외여행 지출이 여론화하고 있지만 무분별한 과소비야말로 한국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어쩌면 남의 과소비를 탓하면서 우리 모두가 낭비하는 생활 습관에 젖어들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 물가상승 압력, 환경오염 및 산업구조의 왜곡 등은 절제없는 소비생활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건전한 소비문화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바로 에너지 과소비이다. 1차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 절약적 산업구조의 추진은 20년이 넘도록 강조되어 왔으나 한국은 선진국들에 비하여 가장 빠른 소비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제 세계 6번째의 석유 소비 대국으로 등장했다. 작년 7조원에 달한 음식물쓰레기 양 또한 국민경제내 체화한 과소비 관행의 하나다. 그밖에 차질을 빚는 정부·공공의 건설투자, 하루가 멀다하고 쌓이는 과장 홍보·광고물, 가계를 짓누르는 사교육비, 허례허식의 낭비성 관혼상제 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한국 특유의 과소비 문화가 있다. 우리 모두가 익숙해졌고 또 책임을 져야하는 과소비풍토를 성토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건전한 소비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의식구조의 전환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산업정책, 환경·안전 규제, 공정거래질서 등) 정부의 실효성있는 선도적 역할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끝으로 정부가 주장하듯이 현 상황에서 미봉책을 쓰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부실과 취약이 국제수지 불균형의 누적을 통하여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도 없다. 경제 전반에 걸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정책기조의 전환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방향에 맞추어 적절한 중단기적 정책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비관론을 해소할 수 있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해본다.<김세원 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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