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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서 탈고한 「여자에 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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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서 탈고한 「여자에 관한 명상」

입력
1996.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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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 삭발한채 반년의 심혈끝에 출간/문재를 타고난 한 남자가 숱한 여자들과의 만남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모습 그려소설가 송기원씨(50)가 계룡산 기슭의 갑사 대성암에서 탈고한 장편소설 「여자에 관한 명상」(문학동네)을 출간했다. 송씨는 지난해 연말부터 반년넘게 머리깎고 산사에 칩거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그의 장편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의 후속작으로 볼 수 있다. 장돌뱅이의 사생아라는 출생과 존재조건으로 인해 열패한 자의식을 감추기 위해 비록 허위일지라도 마성을 휘두르는 한 남자의 성장과정이 중심을 이룬다. 그가 시골장터에서 커가면서, 우연치 않은 계기로 문학의 길에 빠진 뒤 만난 숱한 여자와의 관계가 주요한 소재가 된다.

『내 인생의 고비마다 으레 여자가 있었고, 여자에 대해 쓰지 않는다면 나 자신에 대해서도 한 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작가 서문처럼 이 소설은 괴짜이지만 비범한 문학적 재능을 지닌 한 남자가 그의 인생에 의미를 던져주고, 풍부하게 만들어준 여자들과의 만남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하지만 제비족같이 비상한 연애의 재주를 가진 남자의 여성편력을 그린 통속소설과는 다르다. 옳은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의 고뇌와 예술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지적인 갈구가 뼈대로 소설을 지탱하고 있다.

속좁은 세계에 갇힌 여자를 정복하고 말겠다는 자만과 그것을 결국 자신의 존재의 천박함을 증거하는 일로 여기며 자학하는 남자. 그 악순환 속에서 그가 만나는 여러 부류의 인간, 「가장 비참한 현실만이 가장 극적으로 현실을 벗어나 가장 화려하게 현실을 재구성한다」는 예술론, 숨겨진 비애로 가득한 인생살이가 교차되어 있다.

소설은 주인공 김윤호가 장터에서 또래 아이들과 여자아이를 데리고 성적 장난을 일삼고, 좀 더 커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간을 저지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깡패 똘마니로 사람을 다치게 한 뒤 숨어 살던 하숙집에서 소설책과 시집을 읽고 문학에 눈 떠 일찍이 탐나는 재능을 선보인 윤호는 문창과로 진학하면서 기행과 일탈을 일삼는다. 도도하기로 소문난 동급 여학생의 얄팍한 자존심을 꺾거나, 창녀가 되어서라도 가족으로부터, 지금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여공, 문학소녀, 기생, 버스 여차장, 술집 호스티스와의 연애체험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소설은 말미에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지난 시절의 연애와 험난한 인생모험이 결국 목표했던 곳을 이야기한다. 「나헌티는 모든 남자들이 똑같어갖고, 한 남자로 여게진단 말이여라우. …곰배팔이먼 어쩌고, 문뎅이먼 어쩌고, 째보먼 어쩐다요? 참말로 나를 원해서, 나가 없으면 살어남지도 못하는 그런 남자가 바로 그런 남자것제라우」 그가 이미 발표한 단편 「늙은 창녀의 노래」에 나오는 창녀의 넋두리이면서 주인공 윤호가 깨달은 참사랑의 모습이다.<김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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