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가 번거롭다. 번거로운 일상을 어떻게 탈출할까. 여행을 잠시 생각도 해보지만, 이내 생각을 접고, 책을 펴든다. 눈길과 「마음길」이 함께 머무는 단원 김홍도가 쓴 시 몇줄.옛 묵을 가볍게 가니
책상에 향기 가득한데
벼루에 물 부우니
얼굴이 비치도다
산새는 약속이나 한 듯
날마다 날아와 지저귀고
들꽃은 심은 이 없으나 저절 로 향내를 발하는구나
……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묵묵 히 거문고를 탈뿐이다.
코끝에 묵향과 들꽃향내가 번져오고, 은은한 거문고 선율이라도 들려올 것처럼 「평온」의 의미를 실감나게 전해주는 글귀다. 벼룻물에 얼굴을 비춰보는 화가의 은밀한 시간을 공유하기라도 한듯한 그 조용함이 참 좋다. 모름지기 「휴식」이란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단원 김홍도는 조선후기의 명화가였다. 산수와 인물 뿐 아니라 서민의 생활을 그린 풍속화도 많이 남겼는데, 그 중에는 음악과 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아주 많이 있어 늘 관심있게 보아왔다. 특히 「단원도」라는 그림은 어느 여름날, 자신의 초당에서 친구들과 보낸 한 나절을 그린 것인데 이 그림에 묘사된 단원의 집이 아주 인상적이다. 잘 자란 오동나무가 널찍한 잎을 드리운 단원의 뜰에는 여름을 맞아 키작은 나무들이 울창하다. 마당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고 열린 방문 사이로는 지필묵이 놓인 단아한 책상과 벽에 걸린 비파가 보인다. 마루는 서너사람이 자리잡으면 가득찰 만큼 조붓한데, 이 마루에서 단원과 그의 친구들이 모여 조촐한 음악자리를 벌였다. 거문고를 타는 한 친구의 반주에 맞추어 다른 친구가 노래를 부르고 단원 자신으로 보이는 또 한사람은 부채를 들고 음악에 심취해 있는 이 그림은 아취가 넘치는 집안 풍경과 사람들의 표정이 정말 여유롭고 멋스러워 보인다.
휴가 여행길에 이런 여름 풍류를 만나기 어렵겠다면, 차라리 묵향과 들꽃향기를 노래한 단원의 시 한편과, 음악이 있는 그의 그림을 곁에 두고 조용한 시간을 가져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송혜진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송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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