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던 한반도에너지기구(KEDO) 사무총장 스티븐 보즈워스씨는 북한원자로 건설을 금년 12월말까지 착공할 것이라고 발표해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풀리지 않은 정치문제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함경남도 신포에 두기의 원자로를 한국을 비롯한 미국,일본등이 세워주기로 한 KEDO협정은 사실 북한도 그 성사여부를 미심쩍어 해온 상태이다.신포 원자력발전소는 엄청난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 북한은 2,000메가와트라는 거대한 에너지를 무상으로 얻음으로써 평양시내의 밤 가로등도 켜지 못하는 지금의 형편없는 전기사정을 단번에 해결해 공업국가로 발돋움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고 대신 한국이나 미국, 일본은 핵발전소제공을 통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안전하게 끌어낼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잘못될 수 있는 소지도 있다. 북한이 근 50억달러(49억23만달러)나 들인 거대한 원자력발전소를 두개나 받고도 호전적 독재체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결국 못된 호랑이에게 날개만 달아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박정희정부 초기의 한국 총외환보유고가 5,000만달러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50억달러라는 것이 얼마나 큰 돈인가를 알 수 있다. 남한이 이 돈의 70%이상을 내게 돼 있다. 그만큼 한국은 긴장하면서 일을 매끄럽게 진행해야 한다.
핵발전소건설의 핵심부분인 계통설계(NSSS)를 맡을 대전 원자력연구소 전문기술요원들이 벌써 두달째 일손을 놓고 데모까지 벌이고 있는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계통설계는 우라늄을 태워 낸 열을 증기로 받아 이를 전기로 전환하는 원자로의 핵심설계기술이다. 보즈워스 사무총장은 금년말안으로 원자로 건설을 착공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계통설계를 담당할 300여명의 박사님들이 일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니 기가찰 노릇이다. 이들 원자력전문가들은 7월22일자로 청와대에 호소문까지 보내면서 데모를 벌이고 있다. 지난 6월25일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원자력위원회는 원자력연구소의 계통설계등의 인원 및 사업을 한국전력주식회사에 금년 12월 안으로 이전할 것을 결의한 바 있는데 이 결정이 잘못됐다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원자력연구소는 선진국의 눈치를 보면서 눈물로 겨우 원자력자립을 해놓고 있는데 이 기구의 핵심역할인 계통설계 등을 효율성이라는 원칙아래 원자력연구소와 대립관계에 있어온 한국전력에 넘겨버리면 결국 한국의 원자력기술자립의 꿈은 깨져버리는 것이라고 연구원들은 주장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소의 계통설계요원이 시공회사인 한국전력아래 들어가는 것은 원전의 안전성확보에도 문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원자력이라는 말만 나와도 알레르기현상을 빚던 국내반대세력과 핵국가진입을 거부하는 선진국들의 방해를 무릅쓰고 정부가 과학자들을 감싸고 연구풍토를 조성해 결국 80년대초에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기술까지 발전시켜놓고 있다. 과학자는 누군가의 강력한 보호가 없으면 성공할수가 없다. 각고 끝에 원자로 계통설계기술을 개발해 놓고 있는 원자력기술인재들을 어떻게든 보호해야 한국이 원자력기술국으로서의 자부심을 키울 수 있다. 효율성이유로 과학자들을 강압하기 보다는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의 원자력기술은 맥을 잃고 미국 등의 기술로 대체돼 한국의 원자력기술자립의 길은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정일화 편집위원 겸 통일연구소장>정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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