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부대 박래만 소령 아들잃고 복구 지휘/청성부대 이종우 소위 철책 점검하다 참변재난현장에는 가슴찢는 사연뿐 아니라 눈물겨운 휴먼드라마도 있다. 산사태로 아들을 잃고도 피해복구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승리부대 민심참모 박래만 소령(36·육사 40기)이 가슴찢는 사연의 주인공이라면, 폭우속에 소임을 다하다 순직한 이종우 소위(23·3사 32기)는 군인정신에 충일한 청년장교였다.
17명의 사망자를 내 가장 피해가 컸던 승리부대의 재해대책반으로 편성된 박소령은 27일 하루종일 업무에 여념이 없었다. 전날부터 철야근무한 박소령이 귀가하지 않아 두 자녀와 밤을 새운 부인 김해숙씨(36)는 산사태가 군인아파트를 덮치는 바람에 아들 윤화군(7)과 함께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박소령은 연락을 받고 급히 현장에 달려갔지만 거센 물결에 휩쓸려간 아들을 찾지 못하고 울며 귀대해야했다. 윤화군은 28일 아침 아파트에서 4백여m 떨어진 비닐 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산사태로 희생된 어린 넋은 29일로 예정된 순직 사병들의 영결식 때 함께 이승을 떠나게 된다.
청성부대 7연대 전방철책대대에 근무하던 이소위는 27일 상오 9시께 야간경계 근무가 끝난 뒤 소대원들을 재우고 막사 및 철책선 안전점검에 나섰다.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근무한 장교는 상오중 쉬게 돼 있으나 부대의 안위가 걱정돼 잠자리에 들 수 없었던 것. 이소위는 막사주변의 위험예상지역을 살펴본 뒤 철책선 붕괴우려지역을 점검하다 폭우로 지반이 약화된 철책선이 무너지면서 깔려 숨졌다. 부하들에게 자상하기 그지 없어 「형님」으로 통했던 이소위는 문단등단을 꿈꾸며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문학청년이기도 했다.육군은 이소위를 일계급 특진추서키로 했다.<홍희곤 기자>홍희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