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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폭우재난­연천군 차탄천 범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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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폭우재난­연천군 차탄천 범람 현장

입력
1996.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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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들판 삼켜버린 황토바다/지붕위 고립 구조 애태워/“폐수사건이어 물난리” 주민 허탈/물위 가축사체까지 떠다녀 “참상”/교통 완전 두절 구호품조달 걱정온 천지가 황토 바다였다. 반나절동안 4백㎜ 이상의 집중폭우가 쏟아진 경기 연천읍은 27일 상오 시가지 전체가 물아래에 잠겨 있었다. 황토빛 급류위로 언뜻 언뜻 보이는 가옥의 지붕과 건물 윗부분만이 이곳이 읍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읍내 도로는 1.5m까지 차오른 흙탕물로 수로가 됐고 주택가 지붕 위에는 고립된 이재민들과 돼지 등 가축들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상악화와 도로·철도의 유실로 헬기와 구조장비는 제대로 접근하지 못해 안타까움만 더해 주었다. 통신과 전기까지 두절돼 고립된 육지의 섬으로 변한 연천에서 주민들은 뻥뚫린 하늘만을 원망하며 속수무책으로 장대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주민들은 한탄강의 폐수오염사건으로 지역사회와 생업이 큰 타격을 받았는데 다시 물난리까지 만나자 할 말을 잊었다. 하오늦게부터 물은 서서히 빠져 나갔으나 주민들은 구조와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며 공포와 불안의 하룻밤을 보냈다.

27일 상오 7시 차탄천 상류 현가리 제방. 폭우로 불어난 하천물이 범람하면서 읍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뒷산인 망고산과 차탄리 공설운동장에는 밀려든 1만여명의 읍민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1층이 물에 잠긴 읍내 군청에는 수백명의 시민들이 2, 3층에 모여 물이 빠지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급히 대피하느라 귀중품이나 가재도구를 챙기지 못한 이들은 비에 젖은 옷을 체온으로 말리며 추위와 불안에 떨었다.

폭우가 가장 위세를 떨친 상오 9시께는 연천읍 상리 가정집 지붕에서 40대남자가 딸과 함께 숨가쁘게 구조를 요청, 보는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물이 목까지 찰 정도로 불어나 연천초등학교로 대피한 5백여명의 주민들은 상황이 조금 나은 군청으로 대피하느라 또 한번 물속을 건너야만 했다.

홍수피해는 가옥과 임야,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았다. 신서면등 양계장과 돈사에서 떼죽음을 당한 돼지와 닭 수백마리가 물위를 둥둥 떠다녔다. 가로수는 허리부터 꺾여 있었고 가드레일은 2백여m가량이 물에 떠밀려 방치돼있었다.

연천으로 향하는 각 도로는 몰려든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서울과 의정부등지로 통하는 3번국도는 인근 산에서 쏟아진 물로 곳곳이 흉하게 유실됐으며 서울쪽으로 대피하려는 자가용들이 서로 엉켜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차탄천의 범람에 이은 전곡읍 군평리 소수력발전소 청산댐의 옹벽 유실은 설상가상이었다. 집에 있던 일부 지역의 주민들까지 모두 대피 행렬에 올라야 했고 연천군의 전지역은 침수가 됐다.

하오들어 비가 잦아들면서 시내 일부의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진흙투성이로 변해버린 집앞에서 이재민들은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망연자실했다. 일부 주민들은 젖은 이부자리와 옷가지를 널어 놓고 초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불안한 밤을 보냈다.

경찰과 군이 차탄교 등 연천읍 출입도로를 통제해 가족의 안부를 걱정하는 시민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연천읍과 이어지는 전곡읍에는 고립된 가족들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 들었다. 문호식씨(32·연천읍 차탄리)는 차탄교를 넘지 못하고 발을 구르다 간신히 망곡산으로 대피한 아버지 문창덕씨(65)와 휴대전화로 통화한 뒤 안도했다.

주민들은 연천소수력발전소댐 관리가 평소 부실했고, 철원까지 4차선 확장공사를 하면서 하수구를 막아 물이 빠져나오지 못했으며, 하천 준설공사때 제방을 높이 쌓지 않은 것 등 인재의 요인이 피해를 더욱 크게 했다고 비난했다.

연천읍민들은 『북한지역의 집중호우로 임진강이 범람해 큰 피해를 본 65년 이후 31년만의 대홍수』라며 하늘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연천=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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