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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고영훈(’97 미술시장 개방 이 작가에 기대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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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고영훈(’97 미술시장 개방 이 작가에 기대한다:2)

입력
1996.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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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서 초대전 요청 쇄도 “국제통”/대조적 이미지 일상사물 극사실기법 재현 문명비판 주효서양화가 고영훈씨(44)는 해외에서 개인전이 열리는 때를 제외하고는 서울을 떠나본 적이 없는데도 외국거주작가로 잘못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날 때마다 언제 입국했느냐고 묻곤 한다. 92년 토탈미술관 개인전 이후 국내전을 갖지 않은데다 유럽과 미국의 유수한 화랑에서 그의 초대전이 잇따라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배경으로 돌, 새의 깃털, 시계등의 대비를 통해 문명과 사회비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작품은 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6월에 열린 스위스 바젤아트페어에서는 개막 당일 수백장의 홍보팸플릿이 동났고, 출품작 8점중 5점이 첫날에 팔렸다. 또 미국 뉴욕의 말보로화랑, 샌프란시스코의 이스트웨스트화랑등 세계적 화랑들의 개인전 요청도 쇄도했다.

이처럼 인기가 높아 서울 양천구 신정동 그의 작업실에는 완성된 작품이 남아 있을 새가 없다. 최근 본격적으로 붓질을 시작한 50호짜리 그림과 스케치가 끝난 밑그림 두어 장이 있을 뿐이다. 그는 『극사실기법이 동원되므로 100호 기준으로 제작기간이 보통 한달 정도 걸리고, 완성 즉시 외국화랑들이 작품을 가져가 보관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유럽무대에 처음 진출한 건 10년전인 86년. 당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대표로 하동철씨(서울대 미대교수)와 함께 참가했던 그는 전시가 끝나는 길로 작품슬라이드와 홍보자료를 들고 파리로 향했다. 「보따리장사」로 전전하던 그를 처음 발굴한 화랑은 알랑 브롱델갤러리. 여기서 88, 90, 93년 3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그는 94년 5∼6월 런던과 암스테르담에서 연 유럽순회전과 94년 12월∼95년 6월의 미국순회전에서 출품작 90%가 팔림으로써 국제작가로서 발돋움했다. 특히 유럽순회전 당시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여왕이 작품 2점을 구입했고, 미국서는 뉴욕의 1급화랑인 마리사 델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져 국내작가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70년대 이후 돌을 소재로 선택해 「돌멩이작가」로 불리기도 한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일상사물을 기막히게 재현해낼 뿐 아니라 상이한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술평론가 김영순씨는 『인류의 공통된 역사와 문명 속에서 개인의 흔적을 찾으려 했던 것이 작품의 기본개념』이라며 『색동저고리와 한복보다는 죽은 새의 날개나 버려진 냄비등의 일상적 소재를 통해 한국성을 부각시켰던 점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평했다.

그의 주요 일정으로는 11월 알랑 브롱델갤러리작품전에 이어 97년 프랑스 가나보브르와 마리사 델레갤러리의 개인전이 잡혀 있고, 국내 개인전은 가나화랑건물이 완공되는 내년 중순쯤 가질 예정이다.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나온 그는 미술기자상(87년)과 제1회 토탈미술대상(91년)을 받았다.<최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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