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로 집권경력 전 대통령/벨기에 육사 졸업·독 유학 투치족 출신 온건파쿠데타에 성공한 투치족 주도의 부룬디 군부가 후투족 출신 실베스트로 은티반퉁가냐 대통령을 축출하고 추대한 피에르 부요야는 전직 대통령이다. 군인출신의 부요야는 87년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에 취임했었다.
그는 비록 쿠데타로 집권했으나 후투·투치·트와족 등 3개 종족에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국민단결헌장」을 만들어 종족 갈등을 줄이는데 노력했다.
대통령시절 부룬디에 민주주의를 도입하기도 한 그는 그러나 93년 6월 독립후 31년만에 처음 실시된 민선 대통령선거에서 후투족 출신 야당후보 멜시오르 은다다예에게 패해 권좌에서 물러났다.
권력을 잃게 된 투치족은 그해 10월 공수부대를 동원, 쿠데타를 일으켜 은다다예 대통령을 살해했다. 이에 후투족이 저항하고 나서면서 두 종족간 유혈충돌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이 종족분쟁은 결국 15만명이 숨지고 인구 5분의 1이 국외로 탈주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 외무장관이던 은티반퉁가냐가 사태를 수습하고 대통령직을 승계했으나 투치족은 호시탐탐 정권을 다시 찾을 기회를 노려왔다. 때마침 20일 후투족이 투치족 난민촌을 습격, 어린이와 부녀자 340명을 학살하자 투치족이 주도하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부요야는 49년 11월 부룬디 남부 루토부에서 출생, 75년 벨기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76년 프랑스 기갑부대 장교과정을 수료했다. 80∼82년 독일 유학후 소령으로 귀국, 대대장을 지내다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대통령에 옹립된 직후 『나는 비록 군인출신이지만 군사적인 해결을 원치 않는다』며 평화적으로 이번 사태를 해결할 뜻을 비쳤다.
하지만 미국등 국제사회는 그가 온건성향이기는 하나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의해 두번째 권좌에 오른 점을 들어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해묵은 종족분쟁 역시 쉽게 가라앉을 전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권대익 기자>권대익>
◇부룬디사태 일지
▲62년 7월:벨기에로부터 독립
▲66년:미셸 미콤베로 대위(투치족), 은타레 국왕 축출
▲72년:후투족과 투치족 내전, 10만명 사망
▲87년:피에르 부요야, 쿠데타로 대통령 취임
▲93년:첫 자유선거에서 멜시오르 은다다예 대통령(후투족) 당선
▲93년 10월:투치족 공수부대, 은다다예 대통령 살해. 후투족과 투치족 내전 재발로 15만명 사망, 인구 5분의 1 국외 탈출
▲94년 7월:12개 정당, 4년간 연정 및 98년 대선 실시 합의
▲94년 9월:실베스트로 은티반퉁가냐 대통령직 승계
▲96년 4월:후투·투치족 상호 공격
▲96년 7월19일:투치족 주도 정부군 후투족 난민촌 소개작전 개시
▲96년 7월20일:후투족 반군이 투치족 대량 학살
▲96년 7월24일:투치족 군부 쿠데타, 은티반퉁가냐 대통령 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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