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통계와 함께 살아 간다. 날이면 날마다 통계와 지수, 지표가 쏟아져 나온다. 통계라는 것이 수치의 총체이므로 숫자의 홍수속에서 산다고도 할 수 있다.통계라면 인구나 주택조사 결과에서부터 출산율 사망률 취학률 무역고 물가지수 등 무수하다. 더 세분해 인구 몇명을 기준으로 한 교통사고 사망률이나 고등교육기관 재학생수, 개도국 출산 사망률 등이 다 통계이다.
신문사 국제부 외신 텔렉스를 통해 들어 오는 각종 통계중에는 『이런 통계조사도 있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들도 있다. 국가별 부패도나 청렴도, 국가 인지도 같은 통계들이다.
집단 사회 국가의 현상과 변화 흐름을 짚어 내고 앞날을 예측하는 데 통계처럼 유용한 것이 없다. 아니 오늘날의 사회생활과 과학은 통계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통계수치에 묻혀 살다 보면 그것이 수단인지, 목표인지 구별하기 힘든 본말 전도 현상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일정기간의 무역수지를 목표에 맞추기 위해 수출물량을 예정보다 앞당겨 선적하는 일이 있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일정기간만 물가 인상을 억제, 물가지수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통계는 경제 현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인가, 목표 그 자체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우리처럼 사회가 온통 「수치 목표」를 향해 달려 온 경우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한 것은 아닌지. 새삼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애틀랜타 올림픽을 보면서다.
올림픽에서 금 은 동메달 수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외국에서는 우리처럼 일반화해 있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유독 순위에 집착한다는 얘기이다. 어린애들도 은메달이 몇개든 금메달 한개만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은메달 몇개가 금메달 한개와 같다고 하는 식의 계산법을 만들어 내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도대체 은메달 동메달을 아무리 많이 따도 금메달 수가 적으면 순위가 뒤진다는 것은 더 납득하기 힘든 일 아닌가. 그래서 외국에서는 순위에 우리만큼 신경을 쓰지 않는 지도 모른다.
스포츠만큼 국위를 효과적으로 선양하는 분야도 없다는 지적은 백번 맞는 말이다. 외국에 나가 보면 이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스페인에서는 94년 미국 월드컵때 자기나라 대표팀이 한국팀에 혼쭐이 난끝에 무승부를 기록한 뒤 한국이란 나라의 존재를 알게된 사람도 많다고 그곳 동포한테 들었다.
아무리 외국에서는 우리만큼 순위에 집착하지 않는다 해도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내면 세계속에 또 한번 이름을 날릴 것이다. 그런데 그 순위가 곧바로 우리사회의 진정한 「힘」과 「성숙도」 를 나타내는 것일까.
얼마전 유엔개발계획(UNDP)이 평균수명 교육수준 구매력 국민소득 문맹률 등을 토대로 조사한 「삶의 질」 순위에서 한국은 174개국중 29위를 차지한 것으로 발표됐다. 무척 고무적인 조사 결과이다.
그렇다면 사회의 성숙도에 대한 통계조사를 할 경우 우리처럼 일등 밖에 모르는 사회,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 따지는 사회가 어떤 순위에 놓일지 궁금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