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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선택/정구영 서울여대 총장(한국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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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선택/정구영 서울여대 총장(한국 논단)

입력
1996.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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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아쉬운 눈 앞의 이익 때문에 정말로 소중한 것을 가볍게 여겨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며칠전 알래스카를 다녀오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사실이다. 원래 알래스카는 러시아의 땅이었으나 재정이 궁핍해진 러시아는 1867년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인 윌리엄 에이치 수워드(William H. Seward)에게 간청을 해서 720만달러에 매각하였다고 한다.아마 러시아쪽에서 볼 때는 거대한 얼음덩어리에 불과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땅을 720만달러에 팔았으니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만족해 했음이 분명하다. 거꾸로 미국쪽에서는 그따위 쓸데없는 땅을 720만달러나 주고 샀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알래스카 매입의 장본인인 국무장관의 이름을 붙여 「수워드의 어리석은 행위(Seward`s Folly)」라고 했을까 싶다.

○눈앞 쾌락만 추구

그러나 오늘날 알래스카는 더 이상 쓸모없는 땅이 아닌 보석과 같은 땅으로 평가받고 있다. 석탄은 앞으로 400년 동안 미국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공급하고도 남을 만큼 무진장으로 묻혀 있고, 대유전이 발굴되어 엄청난 양의 기름이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는가 하면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 금, 목재, 연어 등 각종 생선 등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에너지 매각대금을 비축하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과실금 중의 일부로 주민 1인당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연간 1,000달러씩 생활보조비로 주에서 지원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디 그 뿐인가. 세계가 지구촌화하면서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는 미국의 중요한 방위기지로서 공군기지가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미국본토, 북미서부, 북유럽, 극동지방을 이어주는 세계 하늘의 십자로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으니 미국으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현명한 선택을 한 셈이다. 반면 러시아로서는 아무리 가슴을 치고 후회해도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남의 땅이 되고 만 셈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중요한 가치나 의미를 망각한 채 눈 앞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어찌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팔아 버린 경우에만 해당이 되겠는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어리석은 사람도 이스라엘역사에 등장한다. 사냥하고 돌아와 몹시 허기를 느낀 에서라는 인물은 쌍둥이동생인 야곱에게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며 가볍게 팥죽 한 그릇과 바꾸고 만다. 막연해 보이는 미래의 축복보다는 현재의 만족에 탐닉했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 뒤늦게 방성대곡하며 장자의 명분을 되찾으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말았다.

요즈음은 신문을 펼쳐 보기가 참으로 두렵다. 혹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종말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고 했는데 종말은 커녕 당장 내일이 없는 것처럼 양심이고 명분이고 다 훌훌 벗어던지고 당장의 쾌락과 만족을 위해 미친듯 돌아가는 것 같다.

소녀가장으로 늙은 할머니와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어리디 어린 11세 초등학교 여학생을 술을 먹이고 본드까지 흡입케 한 뒤 강제로 돌아가며 성폭행하여 결국은 음독자살하도록까지 몰고 간 사건,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는 여중생의 성폭행, 출산, 낙태사건등으로 신문 사회면이 연일 어지럽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급기야는 극히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중산층 주부들까지 무료하다는 이유로, 자식들 과외비를 벌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윤락행위를 하는가 하면 주부들 사이에 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고소위 「묻지마관광」이 번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니 어안이 벙벙하다. 당장은 즐거운 듯 싶고, 누구보다도 스릴 넘치는 선택을 감쪽같이 한 것 같으나 결국은 자신도 망가지고 가정도 망가지고 사회도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셈이다.

○너무 늦은 깨달음

어리석은 선택의 쓰디쓴 열매를 맛보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버린 경우가 많다. 하나같이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내이며, 부모일진대 무너진 신뢰를 무엇으로 다시 쌓아갈 수 있을 것인가. 보통때에는 별로 소중해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 부모의 자리, 단란한 가정을 찰나적인 쾌락과 만족을 위해 선택한 대가로 잃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하고 귀한 자리임을 깨닫게 된다는 데 비극이 있다.

어리석은 선택의 혹독한 결과를 우리는 이런저런 예를 통하여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한다면 그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는 결국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를 너무 늦기 전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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