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김병찬·김관명 기자】 북한 주민 1명이 기아를 견디지 못해 한탄강을 타고 휴전선을 넘어 24일 강원 철원군 초소를 통해 귀순했다.육군은 휴전선 북쪽으로 18㎞ 떨어진 강원 김화군 근북면 건천리 주민 박철호씨(41)가 24일 상오 7시42분께 육군 제3사단 초소로 귀순했다고 발표했다.
박씨는 22일 밤 고무물주머니에 의지해 물이 불은 한탄강을 건넌 뒤 23일 비무장지대에 들어왔으나 길을 잃고 헤매다 24일 남방한계선 초소 전방에서 우리측 초병에 관측돼 유도조의 안내로 귀순했다.
박씨는 이날 하오 초소 현장에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식량난을 견딜 수 없어 귀순했다』며 『오래전부터 삐라와 대북방송을 통해 남쪽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귀순동기를 밝혔다. 박씨는 또 『북한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다』며 『시체가 실려나가는 것을 자주 봤다』고 말했다.
박씨는 식료품 수매점에서 수매원으로 근무해 왔고 북에 재혼한 부인과 가족을 두고 있다.
박씨를 처음 발견한 이광혁 상병(23)은 『짙은 안개로 시계가 10∼20m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했으나 비무장이어서 곧바로 귀순자임을 알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민간인이 귀순한 것은 74년 6월 이후 5번째다.
◎“북 식량난 심각 배급 완전 중단/굶어죽어 실려나가는 것 봤다”/박철호씨 일문일답
24일 귀순한 박철호씨(41)는 군부대측이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시종 말을 더듬거리고 가족들의 이름까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등 몹시 긴장된 모습이었다. 박씨는 『굶어죽느니 남한에 가자는 심정으로 귀순했다』며 『가족을 동반하면 경계망을 돌파하지 못할 것 같아 혼자 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5분여 동안 짧게 진행된 회견에서 『귀순 후 부대에서 5년만에 처음 닭고기를 먹었다』며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한 상황임을 전했다.
박씨는 베이지색 작업복 차림을 하고 등에는 봇짐을 메고 있었으며 푸른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검정색 고무로 만든 물주머니 1개와 「희망」이라고 쓰인 검정색 물통을 갖고 중국산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박씨는 군부대 조사에서 55년 7월11일 강원 김화군 창도리에서 태어나 현재 김화군 건천리에서 식료수매 종합상점 수매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74년 김화군 원남중학교를 졸업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95년 9월 전처 손금순씨(38)가 군대 사관장과 불륜을 맺어온 사실을 알게 된 뒤 이혼, 지난해 1월 1남1녀를 두고 있던 이혼녀 김정숙씨(39)와 재혼했다. 전처와의 소생 중 딸(15)은 전처가, 아들(14)은 본인이 부양하고 있다.
다음은 박씨와의 일문일답.
―귀순동기는.
『배가 고파 죽을 바에는 남쪽으로 가자는 심정으로 귀순했다. 평소 삐라와 대북방송을 통해 대한민국을 동경해 왔다. 북한은 남한을 악선전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남한이 훨씬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귀순과정은.
『17일께 귀순을 결심했다. 22일 저녁 식사를 하고 집을 나와 고무주머니를 끌어 안고 한탄강을 건넜다. 장마로 물이 불어 북측 초병에 쉽게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3일께 비가 많이 내리고 안개도 많이 끼어 길을 잃고 헤매다 다시 북쪽으로 길을 잘못 접어들기도 했다. 24일 새벽이 돼서야 남한 군부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현재 북한 주민들의 실정은.
『북한에는 식량배급이 완전히 중단돼 있다. 풀뿌리를 끓여 소금을 찍어 먹기도 한다. 18, 19, 20일에도 한명씩 죽었다』
―굶어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나.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시체가 실려나가는 것은 자주 봤다』<철원=김관명 기자>철원=김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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