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권태로부터 탈출하는 본격 피서철이다. 그러나 여행자 발길이 닿는 곳마다 향락음악이 범람한다. 고급스런 호텔이나 휴양지 곳곳에 노래방 없는 곳이 없다. 몇 해 전 들렀던 울릉도도 그렇고 명사십리가 있는 선유도도 그렇다. 여행이란 게 고작 먹고 마시고 밤새 몸을 흔들어대는 것 뿐인가.우리 국민들에게 중금속보다 무섭게 침전돼 있는 향락정서의 중독은 심각한 도를 넘어섰다. 기행적 여행행태는 국내 뿐아니라 이미 국제 망신거리로 등장한 지 오래다.왜 그럴까. 보고 듣고 배운게 흥청거리는 것 뿐인 환락환경 때문이다. 텔레비전은 밤낮으로 천방지축 댄스음악만 보여주고 고속도로휴게소의 스피커나 달리는 고속버스 역시 손님 서비스랍시고 향락업소 홍보요원 노릇만 한다. 그뿐인가. 외국인이 즐겨 찾는 남산의 기념품가게는 북한상품 수준에다 뽕짝의 요새가 된 지 오래다.
차이코프스키는 결혼 실패에 따른 극도의 우울한 심경을 달래기 위해 여행길에 나섰다. 그 여행은 유명한 「이탈리아기상곡」을 탄생시켰다. 누구보다 여행을 즐겼던 멘델스존은 영국을 10번이나 방문했고 그 결과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뿐 아니라 그 서북방에 있는 동굴에 국왕 「핑갈」의 이름을 붙여 「핑갈의 동굴」이라는 서곡을 작곡했다.
헝가리에서 망명해온 바이올리니스트 레미니와 함께 연주여행을 떠난 브람스가 피아노반주를 해주며 배운 헝가리음악은 「헝가리무곡」을 낳았다. 여행동반자의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시골뜨기 드보르자크가 미국땅을 밟지 않았다면 결코 태어나지 않았을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나 현악4중주 「아메리칸」등은 작곡가에게서 새로운 창작영감의 원천으로서 여행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헝가리작곡가 코다이는 일생에 걸친 민요·민속음악 채집 여행으로 황금보다 귀한 헝가리음악을 현대화시켰다. 영국작곡가 케텔비는 상상의 여행을 통해 「페르시아의 시장」이나 「중국사원의 뜰」 같은 이국정서가 물씬 풍기는 명곡들을 남겼다.
여행은 고갈된 창조에너지를 그 원천으로부터 받아들이려는 호기심 가득찬 모험이다. 그것은 황폐해진 도시 심성들이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으로 찌꺼기 감정을 배설하는 행위가 결코 아니다. 가슴에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여행, 내일의 충전을 위해 무엇을 담아 올 것인가. 여행에 클래식정신을 실어야 한다.<탁계석 음악평론가>탁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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