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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새 애국가 2차례 “한국의 날”/애틀랜타올림픽 유도장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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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새 애국가 2차례 “한국의 날”/애틀랜타올림픽 유도장 표정

입력
1996.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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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함께 황금빛 승전보 연출 “기쁨 두배”/전기영,태극기 몸 두르고 감격의 시상식/일,기대주 요시다도 좌초 초상집 분위기22일(한국시간 23일)은 「한국 유도의 날」. 애틀랜타 시내 중앙에 자리잡은 조지아월드콩그레스센터에 태극기가 잇따라 게양되고 애국가가 연속으로 울려 퍼졌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남녀 유도스타 전기영(한국마사회)과 조민선(쌍용양회)이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올림픽에서도 동반 우승을 차지한 이날은 분명히 한국유도의 날이었다.

「승리의 찬가」가 울리는 가운데 조민선이 먼저 시상대에 올랐고 불과 11분뒤 전기영이 대형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시상대에 올라 목메인 소리로 애국가를 불렀다.

○…지난해 일본의 가노 유키미쓰회장을 물리치고 세계 유도계의 수장에 오른 박용성 국제유도연맹회장은 아이슬란드 유도연맹회장이자 IOC위원인 히키씨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으며 조민선의 두손에 꽃다발을 꼭 쥐어주었다.

원래 작은 박용성 회장의 눈에도, 응원단에 손을 흔들던 조민선의 눈에도 가는 이슬이 맺혔다.

○…이어 전기영은 대형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시상대에 섰고 조민선이 조심스럽게 감격을 새긴 것과 달리 경기장에 운집한 미국 관중과 응원단, 선수단 관계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여유가 있었다.

○…전기영은 준결승에서 승리한 뒤 대기실로 돌아가지 않고 바그다사로프(우즈베키스탄)―크로이토루(루마니아)간의 준결승전을 지켜보는 등 결승전에 철저히 대비.

동시에 벌어진 준결승전에서 먼저 승리를 따낸 전기영은 안병근 코치와 관중석의 한 자리에 앉아 이들의 경기내용을 세밀히 분석했다.

○…조민선은 결승전 도중 종료 1분여를 남기고 부상 때문인 듯 경기를 중단해 한때 코칭 스태프와 응원단을 긴장시키기도.

조민선은 그러나 왼손 엄지의 테이핑을 새로 하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듯 바로 경기에 나서 선수단이 안도.

○…종주국을 자처하는 일본유도는 이틀간 경기서 금메달을 하나도 따내지 못하자 초상집 분위기. 특히 남자 86㎏급에서 동메달 문턱까지 간 요시다가 많은 일본관중들의 열광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슈피티카에게 져 메달획득에 실패하자 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올림픽특별취재단>

◎전기영,씨름·유도집안 “장사혈통”/한때 퇴물취급 수모 극복/세계선수권 두체급 제패/발목 부상도 숨긴 “악바리”

『소처럼 부지런해야 한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을 능가할 수 없다』

유도선수출신 아버지는 10년전 매트를 처음 밟는 13세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실한 아들은 아버지가 현역시절 입어 보지 못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고 마침내 세계 1인자가 됐다.

전기영은 장사의 피를 타고났다. 가족들은 키 1백80㎝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지닌 그가 일제때 대마도씨름대회에서 황소를 탄 할아버지와 고교시절 유도선수를 지낸 아버지 전복균씨(53)를 빼닮았다고 말한다.

전기영은 93년 첫출전한 국제대회인 파리오픈 78㎏급에서 우승한데 이어 같은해 해밀턴 세계선수권마저 제패, 일약 한국유도의 간판스타가 됐다.

하지만 1인자까지의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선발전서 라이벌 윤동식에게 대표자리를 내준 것. 당시 유도인들은 전기영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대를 졸업하고 마사회에 입단하자마자 체급을 올리고 심기일전한 전은 95지바세계선수권을 제패, 재기에 성공했다.

전기영은 우승이 확정된 후 『경기전 발목 부상으로 고생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발목에 테이핑을 했다』고 고백했다.

투지도 금메달감이다.

◎조민선,국내 5체급 석권 “매트 여왕”/94아시안게임 초반 탈락/세계선수권 2연패 재기/기복없는 성적 “독보경지”

『너무 쉽게 우승해 실감이 나지 않아요』

거친숨을 몰아쉬며 경기장을 빠져나온 조민선은 몰려든 내외신 기자들에게 『이제 끝난거죠?』라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학다리 처녀」 조민선(1백73㎝)의 웃는 얼굴에는 인고의 세월이 배어 있다.

87년 서울체중 3년때 48㎏급에서 시작, 해마다 한체급씩 올리며 무려 5체급 국내 챔피언을 지냈지만 92년올림픽 대표선발전서는 박지영에게 패해 올림픽행이 좌절됐다. 72㎏으로 체급을 올릴 생각도 해보았으나 올림픽 챔피언인 김미정이 버티고 있어 66㎏급에 눌러앉았다.

또 93해밀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지만 94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선 뜻밖에도 초반탈락,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와신상담의 나날이었다. 남보다 먼저 일어나 매트위를 뒹굴었다.

95년 이후 그는 패하지 않았다. 95지바세계선수권서 우승, 유도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동일체급 2연패를 이뤘고 올해에는 오스트리아오픈 독일오픈을 휩쓸며 기복없는 성적을 거뒀다.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것이다.

『훈련파트너가 돼준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조민선. 이제 가사수업도 받을 여유가 생겼다. 도복을 벗으면 유도선수인 이충석과 백년가약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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