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공연에 비가 오면 그런 낭패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요일인 21일 하오 4시 예술의전당 한국정원에서 벌어진 진도씻김굿은 달랐다. 가는 비가 줄창 내리고 간간이 소낙비가 퍼붓는 궂은 날씨에도 3,000명 이상이 구경을 왔다. 관객들은 빗발이 굵어져도 자리를 뜨지 않고 우산을 쓰거나 머리에 손수건만 달랑 얹은채 젖은 풀밭에 앉아 끝까지 관람했다. 낭패가 아니라 오히려 비가 와서 더 재미있는 판이 벌어진 것이다.빗 속에 박수와 환호가 터지고 「얼쑤」 「좋지」하는 추임새가 빗소리를 이겼다. 관중의 아우성에 진도에서 온 무당과 악사들도 신바람이 났다. 손님이 썰렁하기는 커녕 굿구경 열기가 곧 난리굿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하면서도 흥겨워하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굿을 마친 뒤 덤으로 인간문화재 박병천씨가 북춤을 선보이자 흥을 못 이겨 뛰쳐나온 관중으로 이내 춤판이 벌어졌다. 굿을 이끈 큰무당 김대례씨와 북춤을 춘 박씨에게는 사인공세가 이어졌다. 「천대받던 굿쟁이들」의 인기는 스타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이야기해야 할 것은 또 있다. 그 많은 구경꾼이 떠난 자리에 바닥깔개나 종이쪼가리는 물론 담배꽁초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굿마당 치울 일을 걱정하던 예술의전당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어떤 신명이 구경꾼들을 빗 속에 붙잡아 두었으며 또 그런 신통한 풍경을 만들어낸 것일까. 내남 없이 모두들 흐뭇한 기분에 취해 한 데 어우러지게 만든 굿 자체의 열린 구조는 또 얼마나 절묘한 것인가. 굿 보는 재미를 한껏 맛볼 수 있었던 좋은 자리였다.
이날 굿은 한국일보사가 예술의전당과 공동주최하는 「한국의 소리와 몸짓 Ⅴ―굿과 범패」 시리즈의 두번째 순서로 마련됐다. 6월16일 황해도 대동굿으로 시작된 시리즈공연은 8월18일 동해안별신굿, 9월15일 영산재를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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