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신문 윤리 망각 등 곪은 곳은 도려내야지난 16일자 한국일보 사회면에 「신문확장 살인까지」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를 읽으면서 어쩌다 우리나라의 신문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이 나라 신문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은 신문부수를 확장하기 위한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간에 갈등의 도가 지나쳐 벌어졌다. 그러나 문제의 초점을 개인의 갈등차원에만 맞춘다면 사건의 본질을 오도할 위험이 있다.
도대체 신문부수가 뭐길래 살인을 하면서까지 부수를 확장하려고 했는가? 이 문제는 우리나라 신문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살펴볼 때 비로소 답을 얻을 수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는 한 이와 유사한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생할 소지가 크다.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을 몇가지 생각해보자.
첫째, 신문사가 지나치게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신문사의 주 수입원은 구독료와 광고료다. 수입의 10∼20% 정도가 구독료이고 나머지 80∼90%가 광고료에서 나온다. 신문사는 광고수입 없이 생존할 수 없다. 광고주는 자선사업으로 광고료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광고주가 신문의 지면을 사는 이유는 가능한 한 많은 독자, 특히 소비가 가능한 독자에게 광고를 전달하고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이다.
신문사는 광고료를 받는 대가로 광고주가 원하는 독자를 확보하여 광고주에게 제공한다. 신문사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독자를 확보하는 것이 바로 광고수입의 증가를 의미하지만 인구사회학적으로 다양하고 계층적으로 세분화해 있고 지역적으로 분산돼있는 독자를 확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독자확장을 통해 광고수입을 증대하는 구조에서 각 신문사는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사건도 이같은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신문사가 광고수입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신문사는 공정거래 윤리를 지켜야 한다.
신문사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적정이윤을 추구하는 동시에 독자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광고수입을 안정적으로 획득하기 위해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일부 신문사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
예를 들면 법정 한도를 초과하는 경품을 제공하고 사원에게 강제적으로 신문부수를 할당하여 판매할 뿐아니라 본사와 지국간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하거나 무가지를 무차별적으로 배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됐던 무가지의 비율은 총 발행부수 중 적게는 20%, 많게는 6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무가지 발행은 신문사간 공정한 경쟁을 해칠 뿐 아니라 배달 후 바로 폐기되는 경우가 많아 사회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신문사의 독자확보경쟁으로 인해 신문은 자연스럽게 상업주의에 물들게 되고 신문의 공익성은 설 자리를 잃게 되어 사회전체가 큰 피해를 받게 된다. 사회의 정의를 담보하는 기관으로 자처하는 신문이 신문사 자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은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신문사는 기사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공정거래를 통해 다른 신문사와 경쟁하는 풍토가 사라질 때 불행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셋째, 발행부수공사(ABC)제도가 하루속히 시행돼야 한다.
ABC제도는 신문과 잡지의 발행부수를 정확하게 측정하여 신문사간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합리적인 광고료를 책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제도이다. 발행부수에 대한 정보는 신문사의 기밀정보가 아니라 독자와 광고주가 같이 공유해야 하는 공적자산이기 때문에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한국일보도 지난 6월 창간 42주년을 맞아 ABC협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ABC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기 때문에 신문사는 무가지를 많이 발행, 독자의 수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ABC제도를 통해서 신문사와 광고주, 독자간의 신뢰가 구축되면 이번과 같은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한국일보가 우리나라 신문산업 구조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다룸으로써 100년 전통에 부끄럽지 않는 신문만들기에 앞장 서주기를 바란다.
곪은 곳을 도려내야만 건강한 새 살이 돋아나듯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과감히 뿌리뽑아 새로운 신문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최현철 고려대 교수·미 아이오와대 언론학박사>최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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