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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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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6.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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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이맘때 19세기가 저물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21세기를 바라보듯 20세기를 바라보며 한 세기가 다 가고 있었다.19세기는 인류의 역사가 농경시대에서 산업시대로 전환된 시기다.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19세기 들어 생산기술과 함께 사회구조를 송두리째 변혁시켜 놓았다. 농사만 짓던 세계가 공업화로 졸부가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말에 이르면서 유럽에서는 현대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동시에 중산층인 부르주아계급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1890년대에 와서는 강국들이 저개발국에 자본과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제국주의의 세계체제가 급속히 구조화하기 시작했다.

이 제국주의끼리의 충돌은 금세기 초의 1차대전으로 한바탕 세계를 뒤흔들게 되지만, 자본과 상품의 유입은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전통적인 생활양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것이 19세기말 현재의 시민사회의 풍경화다.

이 먼지 묻은 고화를 새삼스럽게 끄집어 내는 것은 이 풍경이 금세기 후반이후 오늘의 우리사회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사회가 급격히 달라지자 시민들의 정신도 멍멍해졌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부르주아사회는 기존의 가치에 대한 회의가 싹트고 장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한다. 여기서 인간정신의 퇴폐적, 회의적, 병적 경향이 나타나게 되고 이 경향은 프랑스에서 맨 먼저 시작되어 1890년대에 유럽각국으로 번진다. 데카당스와 함께 유물주의, 찰나적 향락주의로 나타나는 이 풍조는 흔히 「세기말」이라 일컬어져 오고 있다. 세기말 사조는 문이 아직 열리지 않은 문 앞에 섰을 때의 초조와 말세의식 같은 것이다.

서기 2000년을 눈앞에 둔 오늘의 이 땅에 바로 「세기말」이 휩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기 1900년에 19세기를 막 넘기고 죽은 두 사람을 생각한다.

하나는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 세기말사조의 또다른 특징은 탐미주의다. 탐미주의 작가인 와일드의 비극 「살로메」는 그 병적 무드로 하여 세기말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의 탐미주의는 관능적 쾌락, 현세적 향락주의의 표현이었다.

다른 하나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 유럽문명의 정신적 퇴폐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를 비판한 그는 기존 가치의 상실을 「신은 죽었다」고 외침으로써 세기말적 허무주의를 경고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정신적 난조가 유럽의 19세기말을 연상시킨다. 자본주의의 발달과정을 단시일내에 겪은 우리의 졸부들은 당시 부르주아사회의 속물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수출 부진과 경기 침체로 우리 경제가 야단났다는 아우성에 아랑곳없이 사회 전반에 과소비와 호화사치의 풍조가 걷잡을 수 없다. 값이 비쌀수록 외제는 동이 나고 고급 음식점이나 술집은 만원이고 올 바캉스 철에는 사상 최대의 인파가 해외로 나갈 것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것이 세기말의 특징인 유물주의와 향락주의의 발로다. 게다가 가령 요즘 유소녀에 대한 성폭행이 유별나게 꼬리를 무는 수심의 행렬도 병적인 데카당스의 한 양상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20세기만 살고 21세기는 안살 것 같은 낭비와 허장성세, 오늘 보고는 내일 다시는 아무도 만나지 않을 것 같은 부도덕과 무치의 한국적 세기말 증세가 풍미하고 있다.

가지각색의 고무풍선을 매단듯이 사회가 둥 떠서 안정감이 없다. 바람이 불면 날릴 것 같다. 이 위기감이야말로 21세기를 앞둔 세기말의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귀족의 후예로 성년이 되어 재산을 손에 넣자 극단적인 방탕생활을 하다 나중에는 권태를 주체하지 못하는 데제생트, 프랑스의 세기말을 대표하는 작품인 위스망의 소설 「거꾸로」의 주인공처럼 이 권태감이 우리 21세기의 주조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우리는 한국적 세기말의 정신풍토에서 어서 출구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20세기의 성과를 한꺼번에 탕진하고 싶은 허영의 늪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21세기에 벨에포크(좋은 시대)는 없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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