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자 이순옥씨가 전하는 북한인민의 밑바닥생활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는 집단수용소에 들어가 있는 동안 한 여인의 끔찍한 죽음을 봤다. 최월영이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원래 남편이 광산에서 일하다가 갱속에 갇혀 죽어 남편 대신 탄광에서 일했던 것인데 어느날 집에 오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파 길가 채소밭에서 빨간 무 하나를 몰래 캐다가 현장에서 잡혀 수용소로 끌려왔었다.집에는 7살과 5살난 아이가 있었으나 연락할 수 없었다.최여인은 어머니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배고픈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몸부림을 쳤는데 경비병들은 이런 최여인을 「당이 인민의 아들 딸을 잘 보살필 것」을 믿지 못하는 반동분자로 찍어 수용소원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했다는 것이다. 온당한 국가행위라고는 볼 수 없는 이런 공개처형과 빈곤이 김정일정권이라는 철책안에서 지금도 비판없이 활보하고 있다.
한정권이 20세기도 다가는 문명세계에서 어떻게 버티고 서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국제무대를 누비고 있는가는 다른 문제에 속한다. 북한의 고도한 핵전략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자국이익만을 계산하는 냉정한 국제외교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냥 보고 있어서는 안된다.
기본적으로 남과 북은 한나라이고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고 국민의 고통은 서로 나눠야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북한이 어떻게 돼가든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비판을 꺼리는 풍조가 생겼다. 대학캠퍼스에는 북한정권을 찬양하는 벽보는 마구 붙지만 거의 누구도 북한비판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번 국회의 대북정책 질의에서도 정부를 비판하는 소리는 펑펑 쏟아져 나왔지만 어떤 의원도 북한 김정일정권에 대한 비판을 하지는 않았다. 김영삼정부의 대북정책이 갈팡질팡한다느니, 남북간 경제협력은 좀더 신중해야 한다느니, 새로운 정책체계를 구성해야 한다는 등의 여러 비판을 내 놓았지만 김정일정권의 무작한 통치행위나 휴전선 교란행위, 대남비난과 끊임없는 간첩행위등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
북한정권을 비판하는 것이 국회의 할 일이 아니라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사회가 김정일독재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어느덧 대학은 주사파운동장이 됐고 정부도 이런 사조에 휩쓸려 대북정책이 정처없이 부침하고 있어 국회가 혼란을 바로잡아야 할 시점에 선 것이다. 국회는 정부가 집행할 법을 제정하는 일 외에 국가가 나아갈 기본방향을 제시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국회는 김정일정권을 표적으로 한 북한의 공개처형사태, 휴전선 침략행위, 대남비난행위를 정면공격하고 이를 시정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북한 쌀문제도 김정일정권을 위한 것이 아닌 북한인민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북한을 제재하는 입법이 절차상 불가능하면 결의안형식을 통해서라도 김정일체제에 대한 국회의 분명한 색깔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김정일정권을 정면으로 부정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용인못할 불법행위만 그친다면 정권자체는 연착륙시켜도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 북한독재를 그대로 보면서 정부만 비판하는 것은 올바른 국회상을 정립하는데도, 정부정책의 일관성을 갖게 하는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국이나 미국의회가 존경받는 것은 정부정책이 흔들리거나 국민심리가 흔들릴 때 국회가 기본철학을 제시해 정부와 국민이 대안을 찾을 수 있게 해왔기 때문이다.<정일화 편집위원 겸 통일연구소장>정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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